친한 것도 안 친한 것도 아닌 큰집 오빠

by 이연숙
20211123친한것도안친한것도아닌큰집오빠.jpg



그러니까, 나와는 열 살 차이가 나는 사촌 오빠가 있었다.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닌데,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으니 있었다, 가 적당한 느낌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신촌 대흥동이 생각난다.

원래 방이 다섯 개 있었는데

세를 놓으려고 창고였던 곳을 개조한 골방과

콩나물을 키우려고 지었던 장독대 아래 광을

중학교에 들어간 오빠에게 공부방으로 주려고 개조해서

그 집에는 방이 모두 일곱 개가 되었다.

마당 한편에는 물맛이 찝지름한 우물이 있었고

그 옆에 펌프가 있었으며 나중에 설치한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 수돗가가 있었다.

주방마다 수도 설치가 되어있지 않았던 그 때에는

식사를 준비하거나 빨래 혹은 세수를 할 때 모두

사람들이 수돗가로 모여 들었다.


일곱 살 쯤 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어느 여름

엄마가 수돗가에서 나를 씻기고 있었다.

그 때 불쑥 큰집오빠가 마당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지금 숫자로 따지고 나서야 열 살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 때 내 눈에 오빠는 산처럼 느껴졌었다.

(사실 그래봐야 열일곱, 새파란 고딩이었겠구만.)


“아 왜 다 큰 애를 빨가벗겨 놓고 씻겨요?”


때를 미는 엄마의 매운 손끝 때문에 아파서 거의 울 지경이었던 나는

오빠의 그 말 한 마디에 갑자기 창피함이 밀려와 몸을 웅크렸다.

이어지는 엄마의 등싸대기

나는 아픔보다 창피함이 앞 서

일곱 살 인생 처음으로 딱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빠는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입시를 치러 좋은 고등학교에 갔고

공사에 가기 위해 치른 어려운 시험은 통과했는데

정작 쉬운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어른들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늘 잠겨있는 오빠의 방은 그 집에서 미지의 영역이었는데

어느 날, 빼꼼히 열려있는 방문을 보고는

고양이처럼 미끄러져 들어가 봤다.

그 방에는 책도 많았지만 다른 쪽 벽에는 LP판도 많았고 이동식 전축과

운동기구들도 방 한쪽 구석에 있었다.

어른들 말로 ‘승질이 팩!’ 한다는 오빠에게 들킬까봐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방 안에 있는 각종 신문물을 보느라 이미 등 뒤에 오빠가 서 있는 줄도 몰랐다.

하필 그 때 내 손에 들려있던 것은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의 표지 사진이 있는 잡지였는데

승질 못된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잡지를 내 손에서 가져갔을 뿐이다.

방을 나서려다 방문에 움푹 팬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봐도 성인 주먹크기만한 그 것은

‘승질이 팩!’ 한다는 오빠의 것임이 분명했다.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빠와 나는 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빠가 다른 형제들과 더 친했던 것 같지도 않다.

아들 귀한 집 늦둥이였던 큰아버지에게서

딸 둘이 태어난 이 후 막내로 나왔기 때문에

오빠는 땅에 발을 디뎌볼 겨를도 없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 몸이었다.

있는 집에서 귀한 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렵던 형편이라 형제 중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고

대접을 받는 오빠조차 기형적인 애정에 마음이 편치는 않았으리라.

어쨌든 나는 오빠를 뾰족뾰족 모가 난 어른으로만 바라봤던 것 같다.


오빠가 나를 대화를 해도 괜찮을 대상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오빠가 열 살 어린 여인과 사랑에 빠졌을 때 였다.


“너는 마냥 어린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네 나이더라고.”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오빠는 사랑을 이뤘고

나랑 동갑인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다.

오빠에게서 더 이상 ‘팩! 하는 승질’은 볼 수 없었다.

오빠는 행복해보였다.


남아있을 이유보다 떠나야 하는 이유가 더 많았을까?

오빠가 사라졌다고 했다.

오빠의 사랑이 떠난 후 라고 했다.

오빠의 엄마가 떠나고 지난봄에는 누나가 떠났는데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친해졌을지도 모르는 오빠가

이 가을, 문득 생각이 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구피가 자라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