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말다툼(? 사실상 대부분 나 혼자 삐치는)을 하는 이유는 거의 소통의 문제다.
삼십오 년쯤 살았으니 이제는 내가 그러려니 하거나 혹은 K가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면 될 텐데
지긋지긋한 무좀만큼이나 똑같은 상황은 되풀이 되고는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내가 말을 하면 (더러는 답을 꼭 해줘야 하는 말이 있고, 그냥 응, 아니 정도로 추임새만 맞추면 되는 경우도 있다) K는 자주 답이 없다.
예전에는 무턱대고 삐쳤다면 지금은 그나마 마음속으로 재빠르게 여러 갈래로 분석을 해본다.
못들은 걸까?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걸까? 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건가? 등등
앞 선 글에서 얘기했듯, 시댁에 다녀오는 길에 내가 물었었다. 내가 살림을 잘하는 건가? 라고.
한참이 지나도록 대답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창 밖으로 지나가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보고 내가 뭔가 물었다. 딱히 답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닌 혼잣말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 K가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했다.
“못들은게 아니네. 그냥 골라듣는 거였네.”
라고 말하고 나니 공연히 혼자 서러워서 이후로 눈도 감고 입도 다물어 버렸다.
남은 인생을 소통 안되는 이 남자랑 살아야 한다니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캄캄했다.
내가 입을 다물어 버릴테다. 자기가 말하는데 대꾸 안하는 상대 때문에 답답해 죽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무려 이틀 동안 K가 하는 말을 쿨하게 무시해 버렸다. 그래봤자 K가 하는 말이라고는 ‘아침 먹자.’ ‘단추 데리고 나갔다 옵니다.’정도 였지만.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닌데도 역시나 사흘 째 되자 답답해 죽을 것 같은 사람은 K가 아니라 나였다.
그래서 얘기나 하자고 심각한 표정으로 탁자에 마주 앉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어머니의 다정한 말을 같이 곱씹어보고 싶었는데 그걸 그렇게 무시해버리냐, 안 그래도 사는 게 의미가 없다 싶어 우울한데 꼭 그래야만 했냐, 난 먹고 싶은 것도 보고싶은 사람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며, 사흘간 묶여있던 말들은 대 방출했다. 한참 묵묵히 듣고 있던 K가 말했다.
“그럼 나도 우울증인가? 나도 요즘은 하고 싶은 일도, 먹고 싶은 것도 없어.”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 내 성향은 누군가 불쌍하게 보이면 마음이 약해지는 타입이라고 했다.
K의 우울증 소리에 나는 순간 움찔했다.
그럴수도 있어, 은퇴후 그런 사람들 많대. 어쩌면 나보다 당신이 더 심각할지도 몰라. 그러니 같이 상담을 받아보는게 좋겠다고, 진심으로 걱정어린 말들을 쏟아냈다.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k는, 난 거기 간다고 절대 나아질 수 없을 거야. 난 내 마음을 말할 줄 모르잖아. 라고 말했다.
싫으면 할 수 없는거지 싶어 그 얘기는 그쯤에서 접어 두었다.
저녁 무렵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옆에 와 앉은 K가 갑자기 ‘밥 안 먹을 거지?’라고 묻는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파서 요거트에 견과를 말아먹은 참이라 안 먹을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에도 속이 안 좋아서 안 먹는다고 했잖냐고 한다.
“속이 안 좋아서? 내가? 무엇을?”
“방어를.”
“방어라고 한 거였어? 난 또 밥 안 먹냐고 한 줄 알았지.”
오전부터 와도 와도 너무 온다 싶게 눈이 내렸는데 그 것이 또 비와 섞여 내려 길바닥이 철벅철벅하다.
평소 오 분 거리를 조심히 걷느라 십오 분 걸려 갔는데 방어가 품절이란다.
왔던 길을 되돌아 단지 옆 큰 건물 안에 있는 포차집으로 갔는데 그 곳은 방어메뉴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는 조금 멀리 떨어진 횟집까지 가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길이나 좋으면 천변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 때 상황은 뭘 해도 불편할 판이다.
그럼에도 K의 결정은, 가보자! 였다.
아마도 방어가 몹시 먹고 싶었나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묵직한 그의 한 마디.
“나 우울증 아닌가봐. 며칠 전부터 방어가 엄청 먹고 싶었어.”
“@#$%^&???”
우울증은 아무나 걸리나.
K와 우울증,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이 아닌 이유가, 먹고 싶은 게 있었다는 걸 생각해 낸 것이라니
K선생 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그거 참 참신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