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숙 Dec 30. 2023

어머니, 쓰담쓰담 해주세요

“예쁘네요. 어떻게 반지를 다 끼고 계세요?”


향내가 싫다며 세면 후 평생 썬크림은커녕 로션조차 바르지 않던 시어머의 손가락에 끼어있는 옥반지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어머니는 쑥스럽게 웃으며 소매까지 걷어보이며 말했다. 앙상한 팔목에는 반지와 세트인 듯한 옥팔찌까지 하고 있었다.


“어~ 이거 ㅇㅇ이(딸)가 서랍을 뒤지다가 보고는 이런걸 하고 있어야지 이렇게 쳐박아 두냐며 껴주더라고.”

“잘하셨네요. 제가 해드린 금가락지도 있잖아요.”

“으응, 그거 버얼써 팔아먹었지.”

“.......”


올 해 첫 날을 고관절 골절로 시작한 어머니의 건강은 가을 들어 부쩍 나빠졌다.

볼은 퀭하게 패이고 체중이 줄어 서 있는 것조차 불안불안해 보일 정도다.

귀도 어두워져 잘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행인건 정신은 아직 맑다는 점이다.

여느 때처럼 점심식사를 한 후 믹스커피를 타서 식탁에 앉았다.

발음이 많이 어눌해져 말을 하려면 단어가 만들어지지 않아 애를 쓰는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이 집 할 때, 그, 뭐냐... 그..그...”

“작은 아가씨요?”

“응! 그 아들.. 돌반지도 다 팔았어.”


동갑인 부모님은 일흔 되던 해 늦은 나이에 시골로 가고 싶다며 여주에 전원주택을 지었다.

서울 아파트를 팔고 대출을 받고도 지니고 있던 금붙이까지 팔았다는 얘기였다.

큰아이 돌에 들어온 금반지를 쌍가락지로 만들어 어머니에게 드렸었다. 

그걸 아직 간직하고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팔았다고 하니 서운했다. 


“니가 ㅇㅇ이 돌반지로 쌍가락지 해줬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 보이면서도 어머니는 예전 기억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얼마전 친정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려보고 싶은 용기가 불현 듯 솟아 올랐다.


“어머니, 그거 말고 또 작은 며느리 칭찬해주실 거 없어요?”

“많지, 살림 잘하지 애들 잘 키웠지, 그만하면 잘했지.”


‘야! 난 간지럽게 그런 말 못한다.’ 라고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긴장했는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시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강원도 이북이 고향으로 한국전쟁 때 어린 동생들 데리고 몇 차례에 걸친 피난을 떠난 후 일가를 이룬 만큼 성정이 대쪽같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분이다. 핏줄을 끔찍하게 여겨 손주들을 거의 키우다 시피 했지만 살갑게 대할 줄은 몰라 손주 여섯이 할머니와 데면데면하다. 게다가 보통은, 여우같은 며느리와는 살아도 곰같은 며느리와는 못산다는 흔한 말을 어머니는 거꾸로 주장하기도 했다.

‘나는 곰같은 며느리와는 살아도 여우같은 며느리는 싫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삼십오 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어머니의 살가운 말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어디서 솟아났는지 말난 김에 한 술 더 떴다.


“어머니, 쓰담쓰담도 해 주세요.”


말을 해 놓고도 ‘엇! 여기까지는 오번가?’ 하는 순간 어머니의 깡마르고 거친 손이 이미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까지 띄우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꾸 어머니의 그 말이 떠올랐다.


“내가 살림을 잘 했나?”

“.......”


언제나 그러하듯 운전하는 K는 말이 없었다.

다음에 어머니를 만나면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토닥토닥 해드려야겠다.

그러면 어머니는 또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작가의 이전글 하나라도 하면 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