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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Feb 08. 2024

치킨은 지가 먹자고 하구선


남자들이 하는 얘기 중 지루한 스토리가 군대얘기, 축구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고 한다.

요즘은 내가 축구와 치킨 레퍼토리를 남자들의 그 것 만큼이나 자주 언급하는 것 같다.

또 한 차례 축구 바람이 일었고 덩달아 5일에 한 번씩 치킨을 먹었다.

16강이었나? 8강 경기가 있던 날이었던가 그 날은 열두 시가 넘어서 경기가 있다고 했다.

저녁 준비를 하려다 축구 중계가 있는 날이라는 것이 생각나서 물었다.


“오늘은 치킨 먹나?”


지난 번에도 중계방송은 자정이 넘어서 있었지만 치킨은 저녁으로 먹었던 터였다.

그런데 K는 정색을 하며 내게 되물었다.


“치킨이 먹고 싶어?”

“!@#$%^&*”


애초에 치킨은 지가 먹자고 하구선 이게 무슨 *소리냐 싶었다.


‘내가 무슨 치킨에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아우 확 마!’


부르르 끓어오르는 마음을 꾹꾹 누르며 쌀을 씻고 찌개를 끓였다.

그래놓고 미안했는지 그 다음 경기가 있던 날에는 집에 들어오면서 아예 치킨을 사가지고 왔다. 

내 다시는 치킨을 먹나봐라, 벼르던 마음은 어디가고 결국 그 날도 비닐장갑을 끼고 깔끔하게 발골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이구, 자존심도 없지.)

그러면서도 참 신기한 사람이다 싶었다. 만다꼬 밤잠까지 설쳐가며 그렇게 열심히 보는건지.


“아침에 일어나서 결과만 보면 되지, 게다가 멋진 장면은 몇 번씩 다시 보여주기도 하잖아.”

“그래도 내가 응원을 해 줘야지.”


경기가 있던 날 아침에 K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면 경기 내용을 줄줄 말해준다.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가서 겨우 이겼다는 얘기, 이 번에도 또 연장전에서 이겼다는 얘기, 그런데 그 날은 선뜻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물어보지 않아도 얘기를 할 테니 서두르지 않고 그냥 빤히 쳐다봤다.


“나쁜 소식하고 더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거 먼저 들을래?”


졌구나 싶었다.


“흥민이 또 울었겠네. 선수들만 힘들었네.”

“한마디로, 못해! 도대체가 전술도 없고 전략도 없고 그 와중에 환하게 웃더라.”

K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하려던 말은 마무리 했다.


“나쁜 소식은 떨어졌다는 거고 더 나쁜 소식은, 그래서 이제 치킨을 못 먹는다는 거야.”

“.......”


그러면서 새벽잠 설쳐가며 축구를 보는게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끝나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더니 불 켜진 집 많더라고.”



여하튼 그리하여 또 한차례 축구 이벤트는 끝이 났고 더불어 치킨과도 당분간 안녕이다.

아쉬운 건지 다행인건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다만, 치킨이 아니더라도 K가 좋아하는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야구든, 캠핑이든, 걷기든, 마라톤이든...

나이가 들수록, 재미있는 일이 나를 찾아 오는 경우는 점점 줄어든다.

찾아오지 않으면 찾아 나서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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