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근처에 새로 생긴 대형 건물에 있는 점포가 어느 덧 거의 다 입주가 완료 된 것 같았다.
이제는 공사를 시작하는 상가를 보며 뭐가 생기려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는 일도 끝난 줄로 알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면서 점심시간 무렵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북적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다.
그런데 얼마전 까지만 해도 영업을 하던 부동산 사무실이 문을 닫았다.
며칠 후 간판이 제거 되더니 바로 이어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다.
사실상 재 공사를 했던 점포가 그 곳이 처음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약 3개월 정도 영업을 하던 샐러드카페가 문을 닫은 자리에 다른 디저트 카페로 바뀌는 공사를 하기도 했고 또 다른 부동산 사무실이 옆 점포로 옮기고 난 후 유부초밥집이 생긴 적도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는 지하철샌드위치 가게나 맛있는 건강빵집이 생기기를 기대하는 바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금도 몇 곳은 한 두 번씩 찾게 되는 나름 단골 가게도 생겼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과정도 모두 제각각인지 어느집은 내부를 먼저 한 후 외부를 하고, 어느집은 간판 먼저 달고 공사를 시작하기도 하고 한 집은 공사가 끝나고도 무슨 업종인지 한동안 알 수 없던 적도 있었다.
부동산 자리에 들어선 그 집은 주방이며 홀의 내부 공사는 이미 끝난 것처럼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홀 안에는 낡은 테이블과 의자등이 며칠 째 쌓여있기만 하고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동차를 타고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는 중에 건물 코너에 있는 그 집에 노란색으로 간판이 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교차로의 대각선 방향에 있었고 우리는 우회전을 하느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스듬히 보이는 간판에는 노란 바탕에 검정색으로 미역국밥이라고 쓰여있었다.
“미역국밥집이 생겼네? 미역국밥을 사 먹는 사람도 있나?”
“왜? 압구정에도 유명한 미역국밥집이 있고 거기 말고도 맛있는 집 많아.”
“그래? 그렇구나, 미역국이 미역국이지 대체 얼마나 맛있길레.”
며칠 후 일본어 교실에 다녀오는 길에 그 건물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여전히 개업은 아직인데 사람들 몇몇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서 간판을 올려다 봤다.
어머나 세상에.
미역국밥이 아니고 마약국밥이었다.
순댓국밥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국밥 사진이 붙어있었다.
얼마 후 K와 산책을 하다가 불현 듯 동시에 생각이 난 듯
“그 때 당신이 말했던 미역국밥...”
“아 맞다! 그거 마약국밥이래.”
라고 말하고는 웃었다.
“아니 어떻게 마약국밥이 미역국밥으로 보이냐?”
“그럴 수도 있지, 그 쪽 방향에서 보니 나도 그렇게 보이던데 뭐.”
나이가 들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싶은 대로 보게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고집은 점점 세지고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만 하느라 일방소통이 되기도 일쑤다.
‘내가 미역국밥이 먹고 싶었나? 미역국을 좋아했었나?’
일부러 계획했던 건 아니지만 두 아이를 모두 7월 복 중에 낳고 산후 조리를 하느라 방에 보일러를 켜고 하루 다섯 번씩 먹었던 미역국이 지겨웠던 기억은 있어도 특별히 먹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허술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폭설이 내린 날, 걷기운동을 한다며 집 안에서 벽을 타고 돌다가 침대 모서리를 걷어차는 바람에 발가락이 부어 정형외과에 갔고, 길을 걷다가 장애물 하나 없는 평지에서 어! 어! 하면서 개구리처럼 넘어져 양 손과 무릎에 요란한 멍자국을 남긴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간판 글자를 잘 못 읽은 것은 차라리 안전하다는 생각이 다 들었다.
몇 발짝 앞에 두고 신호가 바뀌고 있다고 해서 뛰지도 말고
외출 할 일 있을 때 볼 일 한 번에 몰아서 보지도 말며
걸으면서 휴대폰을 보지도 말아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전복술찜이 맛있다고, 청하가 술술 잘 넘어간다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다고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과음을 하지는 말아야겠다….
고 오늘도 결심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