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은 답답하고 등산은 힘들고 줌바는 춤센스가 없어서 못한다.
하여 내가 하는 유일한 운동이 걷기와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요가이다.
수영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지금 사는 곳에서는 수영장까지의 거리나 교통수단이 애매하기도 하고 운동 전후의 절차가 귀찮아서 애초에 포기했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내가 걷기는 좋아하는 것 같다.
거기에는 운동어플이나 뱅킹, 쇼핑, 게임 등 걷는만큼 포인트를 주는 미끼도 한 몫했지만
나는 특히 걸을 때 멍해지는 느낌이 좋다.
그러다 문득 글을 쓸 주제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행여 집으로 오는 동안 잊어버릴까봐 메모를 하기도 한다.
떠오른 생각을 금세 잊어버리는 일은 실제로 매우 자주 있었다.
한 번은 평소와 달리 물가를 거슬러 올라가는 중에 상류쪽에서 구름처럼 떠밀려 오는 안개를 보면서 처음엔 멋지다 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좀 전에 지나온 천의 모양과 너무 갑자기 바뀐 풍경이 어쩐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는 동안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니 돌아와서도 죽어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였을 거야, 라고 합리화해보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천재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만큼 신박한 생각이었음이 분명했다.
그것은 마치 시험을 볼 때 주변 문장들은 문단까지 통째로 심지어 그 옆의 삽화까지 기억나는데 딱 정답인 그 단어 부분만 비어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뭐 아무튼 (메모 한다는 말을 하다가 옆길로 새도 한참 샜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지난 주말에 걸어서 G시에 갔을 때 오빠가 차를 가져 왔냐고 해서 걸어왔다고 했더니 처음엔 그냥 웃었다.
엄마가 ‘걸어서 왔다고?’를 다섯 번쯤 되물었다.
그리고는 올케가 말했다.
올케 : 오빠는 수영장까지 갈 때 걸어서 가자고 하더라구요.
K: 그 정도 거리면 걸어갈만 하죠.
오빠 : 지도를 보니 관악산 자락의 작은 산길을 넘어가면 그렇게 멀지 않더라고.“
참고로 수영장은 우리집과 오빠네집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국제규모의 종합운동장에 있다.
모르긴 몰라도 오빠네 집에서 차로는 15분, 버스로는 열한 정류장 쯤 된다.
올케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도대체 왜? 뭣땜에 자기 몸을 그렇게 혹사시켜요?“
그 말은 두 시간을 걸어서 왔다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까지 함축된 한 마디였다.
생각해보니 그런 말은 처음 들은 게 아니었다.
몇 해 전, 동생 집에 갔을 때 얘기를 하다가 K의 로망이 산티아고 길을 완주하는 거라고 말했을 때 동생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말을 했었다.
”아니 왜, 도대체 뭣땜에 자기 자신을 그렇게 혹사시켜요?“
동생부부는 캠핑에 대한 생각도 우리와 달랐다.
캠핑을 한다며 차를 바꾸고 캠핑용품을 하나씩 사 모으는 우리를 보며 동생은
”거, 나이들어서 길에서 자면 골병 들어요. 벌레도 많고 잠자리 불편하고, 그 고생을 왜 사서 해요?“
라며 자기는 호텔이 좋다고 했다.
동생부부와는 여행코드며 관심사가 비슷해서 잘 맞는 것 같으면서도 또 전혀 다른 취향이기도 하다.
동생이 한 발 물러 선 것이, 캠핑을 가서 불멍까지는 같이 하되 잠은 호텔로 가서 자겠다거나
절충해서 글램핑은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
언뜻 보면 말이 될 것도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불멍을 맨정신으로 하나? 다 마신 맥주캔을 찌그러뜨리면서 다 같이 별을 보기도 하고
그러다 하나씩 쓰러져 자는 게 캠핑이지, 호텔이라고라?
어지간한 호텔비수준이라는 글램핑 비용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K역시 걷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보병 출신이니 걷기라면 지긋지긋할 터인데도 그가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것이 여전히 걷기라고 말한다.
군대 생활하면서 하도 자주 먹어서 동태찌개가 싫다는 말하고는 충돌이 되는 부분이다.
K와 나는 취향도 성격도 참 많이 다르다.
그나마 한 가지, 술 마실 때 취향 하나는 잘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 더 있었다.
내 체력이 못 따라줘서 K만큼은 못하지만
둘 다 걷기를 좋아하니 당분간은 함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도대체 왜 뭣땜에’를 굳이 설명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