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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Jan 08. 2024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어?


이틀 째 시경계를 넘어가는 걷기 강행군(?)길에 나섰다.

이번에는 G시에 갔다오자고 했다.

걷기와 걸음수에 따른 시간과 거리에 대해 빠꼼한 K가 

거기는 갔다가 오는 것 까지는 무리고 가는 걸로 어제 갔던 거리만큼 될 거라고 했다.

G시는 아이들 다섯 살, 세 살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꼬박 이십 년을 살았던 동네다.

지금도 서울에 가려고 버스를 타면 그 곳을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창밖으로 보이는 오래된 상가건물과 대부분 재건축으로 새 아파트가 들어선 와중에

아직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우리가 살던 아파트를 지나칠 때마다 

‘내가 미쳤지, 그걸 왜 팔았을까.’ 

라는 통렬한 반성과 자책을 하는 것으로 G시와의 인연은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 여름, 로또보다 어렵다던 그 지역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 되어

엄마가 살고 있는 오빠집이 G시로 입주를 했다.


굳이 방문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거기까지 갔으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으응~ 딸이야?”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다정한 목소리다.

사실 요즘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을 때마다 긴장이 된다.

지난 번 봤을 때 너무 갑작스럽다 싶게 건망증세가 심해져서 형제들도 엄마도 말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그 것이 치매 과정으로 넘어가는 초기단계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은 하면서도 

혹여 전화를 했을 때 내 목소리를 몰라보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는 걸 어쩔 수없다. 

그 것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해서 당혹스럽지 않을리 없는데도 그렇다.


“점심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순댓국이나 먹자고.”

“어딘데? 그렇지 않아도 오빠네랑 점심 먹으러 나가려고 그랬지. 가만 있어봐 오빠 바꿔줄게”


오빠는 잘됐다, 잘됐다를 거듭 말하며 오늘 엄마가 점심 쏜다고 나갈 거라며 같이 가면 되겠다고 했다. 점심을 공짜로 먹게 된 것보다 무뚝뚝한 오빠가 동생이 왔다는 말에 잘됐다를 두 번이나 연발하는 다정함에 어쩐지 오늘 계라도 탄 기분이었다.



엄마와 오빠부부가 이미 검증했던 오래된 동네 작은 순댓국집에서 마주 앉았다.


“아니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어?”


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빨간 지갑에서 두 번 접힌 오만 원짜리를 꺼내 건네주며 말했다.


“냄새가 나더라고. 내가 또 개코잖아.”

“에이, 그 바람에 나만 손해났네. 에구에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의 표정은 밝았다.


오빠네 집으로 돌아와서 차와 과일을 먹으려고 앉았을 때 


“아니 근데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어? 통 전화도 안하더니.”

“아침에 갑자기 순댓국이 먹고 싶더라고. 그래서 엄마랑 점심으로 먹을까 했었지.”

“텔레파시가 통했나보네요. 역시 피끼리는 끌리는 게 있나봐.”


큰올케가 옆에서 훈수를 둔다.


상황이 벌어진 계기 인즉, 오빠부부가 얼마 전에 엄마와 약속을 했더란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돈, 이제부터는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자식들 불러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렇게 쓰라고. 엄마도 그러마고 했었는데 얼마 지나서 정작 밥을 사달라고 하니 엄마가 버럭 역정을 내더란다. 내가 혼자서 자식 셋 그만큼 키워놨으면 됐지 돈이 어딨다고 그러냐며.

오빠는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그 날 했던 얘기를 다시 했고 그 날 아침에는 아예 노트에 적어줬다고 했다. 

엄마방에 들어가니 엄마가 그 노트를 내게 보여줬다.   

고생하고 힘들게 모은 재산, 이제부터는 자식 손주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갖고 싶은 것도 사는 데 쓸겁니다.-


라고 쓰여있었고 그 옆 장에는 엄마의 현재 통장 잔고와 수령일자를 적어 놓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은 느낌이었다.

재테크에 무지한 나는 나름 ‘신이 감춘’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은퇴를 하고나니 당장 노후에 내 앞가림이나 제대로 할지 막막한데 엄마는 혼자서 서울에 집도 사고 자식들에게 일정금액씩 나눠주기도 했을 뿐 아니라 본인의 노후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었다.

몇 번인가 그 비결에 대해 물었으나 엄마는 입을 꾹 닫았었다.

다 나눠줬으니 이제는 빈털터리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엄마의 계정은 자식들에게 메뉴판의 숫자 보지 않고 밥을 백 년 동안 사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 맛있는 걸 얻어 먹을 수 있다는 기쁨보다 통장을 까 보였을 때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쌈짓돈이 든 통장을 보여줬다는 건 엄마에게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식들이 수다에 빠져있는 동안 엄마는 슬그머니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일어서며 엄마에게


“아유~ 오늘은 순댓국이 아주 맛있더라고요. 호호호”


했더니 엄마가 웃으며 또 말했다.


“아니 그러게 말야,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어. 몰래 먹으려고 했는데에.”


아파트 쪽문을 알려준다며 산책을 핑계삼아 같이 나온 엄마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같이 먹어서 잘됐어. 좋더라.”


라며 미소를 띈 얼굴로 손인사를 한다.

울컥, 눈가가 뜨거워졌다.

앞으로 이런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조그만 엄마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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