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라면 지금쯤 단추를 동생집에 맡기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K가 이번 주에는 쉰다고 하고 절묘하게도 일본어 강사 개인사정으로 나도 모처럼 자유로운 한 주를 보내게 됐다.
이런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며 부산에 가자고 했다.
I와 E로 시작하는 MBTI가 그래도 유일하게 같은 J이다보니 이렇듯 즉흥적으로 여행을 결정한 적이 없었다.
전 같았으면 숙소 기차표 그리고 가고싶은 곳 맛집의 동선까지 고려해 엑셀로 만들었을터다.
훌쩍 이십 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부산에 한 번 살아봤다고 그 동네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다는 근거없는 허세도 한몫 했을지도 모르겠다.
교통편은 운전을 해서 가는 걸로 하고 에어비엔비에서 숙소만 찾아 예약을 한 것이 지난 주였다.
1월말 부터 한시적으로 시작한 일을 하고 집에오면 K는 힘이 든지 저녁을 먹으면서도 졸았다.
하루 세 시간 서 있는 일조차, 안 하던 일이니 익숙해지면 괜찮으려니 했었다.
지난 주중에는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약을 사 들고 들어와서 먹고 일찍 잔다고 들어갔다.
그리고 금요일, 잠을 자다 너무 추워서 전기요를 켜고 내복까지 입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온 몸 근육이 아프고 목도 아팠다.
요가에서 너무 센 동장을 해서 그런가 하면서도 여행이 먼저 걱정이 됐다.
K와 같이 동네 의원에 갔다.
전 같으면 아~ 해보라고 하고 목을 보거나 청진기를 대고 기침을 해보라고 할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는 의사의 말이 참 아리까리 했다.
“그냥 감기일수도 있고 독감이거나 코로나 일수도 있어요. 약은 사흘치를 지어줄테니까 자가 진단을 해보세요.” 끝
‘그러니까 뭐냐, 감기거나 독감이거나 코로나라도 그냥 처방된 약만 먹고 있으라는 말인가?’
말로는 못하고 속으로 꿍얼거리면서 약국에서 약을 받으면서 진단키트도 샀다.
집으로 돌아와서 대문자 J인 K가 식탁위에 진단키트를 열맞춰 꺼내 놓는다.
그것도 몇 번 해봤다고 제법 익숙하게 코를 찔러 시약에 넣고 일사천리로 과정을 끝낸다음 줄이 뜨는지 기다렸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두 개의 카세트에 선명하게 두 줄이 생겼다.
처음처럼 놀랍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으나 어이가 없어서 마주보고 웃었다.
부산 숙소부터 취소했다. 거의 30%에 가까운 위약금을 물면서.
혹시라도 약을 먹고 나으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됐다.
확진을 받은 날 밤에는 약을 먹었는데도 다시 열이 오르고 목이 아픈데다 코까지 막혀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날도 증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같은 두 줄이 나온 K는 쌩쌩하다.
콧물이 멈추지 않아 양쪽 콧구멍에 휴지를 꽂고 있는 모습을 K가 사진으로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의료파업이라는데 하필 이럴 때 병원 갈일 생기는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났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데 커피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
코로나가 나를 보고 약올리는 것 같았다.
“어서와, 코로나는 두 번째지?”
예방주사, 두 번째 출산, 이별 등
한 번 해봤다고 해서 쉬워지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째 코로나증상은 처음보다 더 힘든 것 같다.
단추를 맡기기로 했던 올케와 통화 중에, 코로나 걸려서 부산여행 못가게 됐다고 했더니
그래도 일본여행 가기전에 걸렸으니 다행이죠. 한다.
듣고보니 그게 또 그러네.
원래 그런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 참,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고급 심성을 가지고 있네 싶었다.
4일차 아침
어제보다 몸이 가볍다.
콧물도 잦아들었고 기침도 전 날보다는 덜하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화사하다.
오늘은 사부작사부작 산책이라도 해야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