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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Feb 22. 2024

커피콩 세 알이 할 수 있는 일


작년 봄에 들여온 커피나무에 언제부터인가 초록색 열매가 달렸다.

겨울을 지나면서 잎이 한 번에 우수수 떨어진 와중에도 그 것들은 꿋꿋하게 남아있었다.

열매는 한 줄기에 약 10센티 간격으로 세 개가 있었는데

잎이 떨어진 후에 보니 옆 가지에도 수줍게 한 개가 달려있었다.

그 것들은 몇 달이 지나도록 더 익거나 시들어 떨어지지도 않고 그대로였다.

지난 달 쯤엔가 그 중 맨 아래쪽 알갱이의 색이 조금 변하는가 싶더니 매일매일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 것이 루비처럼 빨갛게 익었을 즈음에는 가지의 맨 끝에 있는 열매가,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가운데 것까지 마치 돌림노래라도 하듯 색이 바뀌어 간다.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커피열매가 익어간다고 말했다.

그 목소리가 잔뜩 들떠있었던가 보았다.

아이들이 제각각 물었다.



“이제 커피로 마실 수 있는 건가?”

“한 스푼 쯤 나오려나요?”

“그럼 그 원두이름은 무엇인가?”

“파주AA라고 해야하나?”

“잘 익으면 따서 한알 한알 씻어서 말려서 갈아서 볶아서 내릴 테니까 그 때 또 놀러와.”


잘 익은 커피콩 세 알 가지고도 꽤 오래 대화가 이어졌다.

이 후로도 열매는 날마다 익어가고 있다.

그것이 신통하고 기특해서 아침마다 안경까지 찾아 쓰고 들여다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거기에 처참하게 떨어진 잎이 남긴 휑한 가지마다 삐죽삐죽 옅은 초록색 새 잎이 나오는 것을 발견할 때에는 마음까지 초록초록해지는 기분이다.

식물 키우는 재주가 없는 것과 상관없이 이 나무는 여러번 감동을 주었다.

처음 파주 식물원에서 한 쪽에 모여있는 커피화분들을 보았을 때

어느 것이 낫고 못하고를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이파리들이 거뭇거뭇하게 망가져있었다.

이것이 판매용인가를 의심할 정도였다.

한 번 실패했던 경험까지 있던 터라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잎이 떨어진 자리에 윤기나는 새 잎이 나올 때마다 

섣불리 기대하지 않는 체 하면서도 뭔지 모를 기대감이 싹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늦은 봄 무렵에는 꽃몽오리가 올라왔다.

며칠 후에 보니 한 송이가 아니라 몇 개의 줄기에 무더기로 핀 것을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그 무렵 나는 우울감에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내고 있었고

커피나무는 키우기 까다롭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생각지도 않았던 꽃을 보자 잠깐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지를 하얗게 덮었던 그리 화려하지 않은 커피꽃은 질 때에도 며칠만에 미련없이 떨어졌다.

농담처럼 붓으로 수정하는 흉내를 내 봤을 뿐이었는데 가을에는 정말로 열매가 열렸다.

애초에 기대따위는 없었다는 마음과 달리 커피나무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무심하게 툭 선물처럼 감동을 준다. 이쯤 되면 밀당의 고수가 아닐까 싶다.

커피 열매는 열렸지만 커피로 마실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터질것처럼 붉게 반짝거리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떨어질지도 모르겠고

이제 다가올 봄에 다시 꽃이 필지도 알 수 없다.

커피콩 세 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 것을 보는동안 기뻤고 잠깐씩은 혹시 모를 기대감에 설렘을 느낀적도 있었다.




집근처에 땅을 내어줄테니 이다음에 나이들면 집짓고 가까이 살자고 했던 친구가 있었다.

예순살이 되면 연애편지 대필을 하며 살 거라며 혹시 내가 연애를 하게 되면 자기가 편지를 끝내주게 써줄거라고 했던 친구도 있었다.

여행중 밤산책을 하는 중에 슬며시 손을 잡으며 우리 이렇게 오래도록 잘 지내자고 촉촉한 목소리로 고백을 했던 친구도 최근에 있었다.

있었다, 는 말은 지금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책임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된 이유를 모른다.

어쩌면 나의 4~5십대의 시간들은 그들이 있어 따뜻하고 풍요로웠을지도 모르겠다.

파파할머니가 되었을 때에 그들이 없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구태여 말로 꺼내본 적은 없지만 내가 그들을 무척 의지했었나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대신 전화번호를 지웠다.

그냥, 다 내 잘못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에게든 사물에게든 기대를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그 때부터 했던 것 같다.

그러지 않아도 낮았던 자존감은 땅을 파고 들어가고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었다.


친구들은 멀어졌지만 기대하지 않던 커피나무의 열매는 잘익은 체리처럼 검붉어졌다.

일단 지금은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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