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시고모님 부부는 여주에서 사과과수원을 관리하셨다.
여주는 쌀이 맛있고 적당한 질감에 단맛이 많이 나는 밤고구마가 유명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
고모님 과수원에서 가져온 사과는 특별히 맛있었다.
해마다 사과를 수확할 때면 시어머니는 그 곳에서 파과를 바리바리 가져오셨는데 그 양이 엄청났다.
어머니는 뚜껑을 접지 않고 그대로 기둥처럼 올려 테이프로 붙인 박스에서도 위로 넘치도록 사과를 담았다. 어느 해엔가는 그렇게 만든 박스를 지하철에 싣고 차가 정차했을 때 한 박스를 내려놓고 또 그 차를 타고 가신적이 있었다. 전철 문 안에는 아버님이 서 계셨고 그 옆에 얼핏 네 박스 정도가 더 있었는데 아마도 큰집에 줄 것과 사과 좋아하는 시누이 그리고 어머니 드실 용도가 아닐까 싶었다.
30년도 더 된 기억이니 불분명한 것들 투성이지만 지하철 문이 열리자 인사할 겨를도 없이 그 큰 박스를 질질 끌어 내어놓고 시크하게 돌아 다시 차에 타셨던 어머니의 모습만 아직도 선명하다.
차도 없던 시절이었다.
여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셨을 텐데 그 많은 박스들을 대체 어떻게 날랐으며
지하철에서 내리면 버스를 다시 타야하는 집까지는 또 어떻게 가셨을까.
그리고 4호선을 갈아타야 했던 나는 그 박스를 어떻게 집까지 가져왔을까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는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다 특히 사과나 배는 더 했다는 거다.
넓지도 않은 집에 곧 넘칠 것 같은 사과박스를 들여놓고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막 일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시부모님은 시골에 집을 짓고 내려가셨다.
그 곳은 양평과 여주의 경계에 있는 산을 깎아 전원주택지로 개발한 곳으로
각 호당 백 평쯤 되는데 건물을 짓고 남은 공간은 바비큐파티를 할 수 있는 잔디로 꾸미는 것이 보통인데 어머니는 그 곳을 홀랑 뒤집어 밭으로 만드셨다.
어떻게 된 것이 산을 파는데 흙이 아니고 순 건축 폐자재가 나오더라고 했다.
밭이 밭으로 제역할을 하기까지는 2~3년이 걸렸다.
그동안은 고추도 망치고 들깨도 잘 안 돼고 참깨는 말라 죽더라고 했다.
어머니는 특별히 고추에 대한 부심이 커서 오래 전부터 여름이면 물고추를 사서
일일이 씻고 말리고 닦고 골라내서 꼭지를 따서 말 그대로 태양초를 만들어내셨다.
식구가 늘자 남의집 옥상까지 빌려서 고추를 말렸는데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질라치면
어머니는 하던일 팽개치고 고추를 걷으러 오르내리셨다.
그렇게 얻은 고춧가루로 만든 김치를 씹으면서 아들들은, 이제 그만하세요. 사먹으면 되지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해요. 라고 말했으나 같이 고추를 닦는다거나 꼭지를 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밭이 어느정도 길이 들자 어머니는 그 곳에 감자며 고구마 들깨 오이 토마토 가지 상추 등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었다.
그러느라 예의 그 높은박스에 때마다 감자며 고구마를 또 넘치게 담아 주셨다.
김장은 보통 이백 포기에서 삼백 포기를 했는데 잘거나 커서 일정하지 않은 배추를 밤새 절이고 다음날 온종일 속을 넣고 나면 일주일은 앓아누웠었다.
양으로 치면 시판 박스의 세 배는 넘을 감자는 먹다먹다 결국은 싹이 나서 버려졌고 김장김치는 이듬해 가을까지 먹다가 묵은지로 냉동실에 쌓여갔다.
감자도 고구마도 방울토마토도 고추도 어머니가 주시는 것은 모두 투머치였다.
“어머니, 너무 많아요.”
라고 말했어야 했다.
지난번 고추장아찌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면 새로담은 장아찌를 병째로 주셨다.
오이지 담았냐고 묻는 말에 아직이라고 하니 김치냉장고에서 큰 통을 꺼내 놓으셨다.
오이가 계속 달려서 나는 또 담으면 된다며.
버려지는 식재료들을 볼 때마다 다음엔 조금만 가져간다고 해야지, 하면서도 어머니를 보면 그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싫다고 하면 어머니가 실망하실 것 같았다.
저녁정보 프로그램에서 깻잎농사를 하는 부부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아내가 평평한 잎을 따라고 했는데 남편은 깻순을 한 짐 따놨다.
그 것을 다듬느라 마당에 풀어놓은 모습을 보자 오래전 어머니의 깻순 생각이 났다.
일요일아침 갑작스런 호출로 시댁에 다녀온 K는 모피를 담는 커다란 쇼핑백을 세 개나 들고왔다. 그 안에는 깻순이 들어있었는데 꼭꼭 눌러담은 그 것들을 거실에 돗자리를 펴고 펼쳐놓으려는데 끝도 없이 나왔다.
심지어 뜨거운 햇볕아래서 방금 딴 그 것들은 아직도 뜨끈뜨근한 열기가 묻어나왔다. 마침 집에 와 계시던 친정엄마까지 합세해서 평평한 것과 나물로 쓸 순을 다듬는데 꼬박 다섯시간이 걸리고도 다 못 끝냈다.
깻순은 데치고 넓은 잎은 양념장에 절이는 과정이 개미지옥처럼 이어졌다.
“이제는 그 많은 깻순을 구경할 일도 없겠네. 그 땐 많아도 너무 많아서 다시는 깻잎 안 먹을 것 같았는데.”
먹을거리를 챙겨주신 양으로만 치면 친정엄마보다 시어머니가 훨씬 많을 지도 모르겠다.
새삼 그 시절의 어머니가 그리워 눈가가 뜨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