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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Apr 10. 2024

베이굴을 먹기 위해서?


주말 아침이면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을 때 K와 나는 집 근처에 있는 본스에 갔다.

입구에서 좌측으로 넓은 공간이 베이글 판매대였는데 일곱시 무렵이면 새 빵이 나오느라 주변이 온통 구수한 빵냄새로 황홀했다. 

마트 안에 있는 스타벅스 팝업매장에서 라테와 아메리카노 그랑데 사이즈 약 3달러, 베이글은 50~60센트쯤 했는데 플레인과 어니언 그리고 블루베리를 사면 2달러 정도였다.

아직 온기도 가시지 않은 베이글과 커피를 사 가지고 마트 앞 파라솔이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5달러 짜리 아침을 먹었다.

식사시간을 거르지 못하는 K 때문에 생긴 습관일 뿐 그 때는 그게 특별한 기억이 될 줄 몰랐는데 지금은 이따금 한 번씩 문득 떠오르곤 하는 애틋한 추억이 되었다.

그 기억이 내게만 그런 건 아니었나보다.


무심히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부부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날도 추운데 남편이 이른 아침에 베이글가게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같은 시각, 아내는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말도 없이 집을 비운 남편을 벼르고 있었다.

아내가 먹고 싶어했다던 베이글을 사 왔다며 뿌듯해하는 남편

혼자 아이들 케어하느라 잔뜩 짜증이 난 아내는 베이글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건 너무 심했다며 남편 편을 드는 쪽과 말도 없이 집을 비워 아내 혼자 힘들었겠다며 아내 편을 드는 패널 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와중에 나는 새벽 여섯시 오픈런을 해야 겨우 맛을 볼 수 있다는 그 베이글이 궁금했다.

하여 평소 안하던 짓을 완전 종합세트로 했다.

그 베이글집을 검색하고 리뷰를 찾아보고 주소와 전화번호 메뉴 주문방식 등을 꼼꼼히 메모했다. 

저녁 무렵 그 것을 K에게 보여주며 한 번 가보자고 했다.

당일 예약을 하면 정한 시간에 가서 픽업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하니 그 걸 해볼 생각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잠 자기 전에 예약주문이 가능한지 문자로 물었다.

아! 이런.

그냥 수요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날이 임시공휴일이었던 것을 생각못했다.

공휴일과 주말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늦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K가 정확히 다섯시 삼십분에 나를 깨운다.

줄 서기 싫어서 다음에 가야겠다고 하니 그래도 한 번 가보는 거지, 라고 밀어부친다.

평소 대기줄에 나처럼 방송을 보고 온 사람들이 더한 건지 여섯시에서 6분 정도 지났는데

가게앞 대기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차 돌려 집으로 가자고 했을텐데 어쩐일로 내려서 줄 맨 끝에 섰다.

K가 주차를 하러 동네를 돌고 있는 동안에도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내가 이기 몬일이고’ 싶었다.

어찌어찌 주차를 하고 줄에 합류했던 K가 이것저것 안내 되어있는 보드를 사진으로 찍더니

990원하는 플레인 베이글을 보며 


“이 정도면 본스 베이글하고 같은 가격인가?”


라고 했다.

본스의 베이글을 기억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촉촉해졌다.

원래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는데 그건 거의 한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나와있는 베이글을 종류별로 담아 집으로 출발할 때는 꼭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드라이브스루에 들러 라테와 아메리카노 그랑데도 사자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커피는 각각 톨 사이즈로 샀다.



ott로 미국 캘리포니아 어느 작은 동네에서 어쩌다 마트 사장이 된 얘기를 보면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라테에서 미국 맛이 났다.

미국 사대주의는 아니지만 그 곳에 살았던 일 년이 내게는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다른건 몰라도 적어도 그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내 생각을 묻고 덮기 급급한 적은 없었다. 그런 줄로 알았다.

어쩌면 언어가 다르니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였다.

사실이 어떻든 나는 그 시절이 좋았다.


K가 대기줄 사진을 찍은 것을 가족톡에 올렸다.

노인정 대화처럼 띄엄띄엄 오고 가는 문자 속에 K2가 


“베이굴을 먹기 위해서?”


라고 물었다.

그 말이 웃겼다.

내가 정말 베이글을 그렇게까지 좋아했었나? 

안하던 짓까지 해가며 사 온 베이글을 식탁위에 늘어놓으니 장관이다.

블루베리 베이글에 같이 사 온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라테와 함께 먹었더니 잠시 후 속이 부글부글 한 것이 편치 않다.

근래 들어 빵이며 국수 등 밀가루는 피하려고 노력했고 라테는 우유대신 오트를 넣은 것을 먹었으니 뱃속이 놀란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베이글을 좋아한 건 아니었나보다. 

나는 그냥, 그 시간의 느낌이 그리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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