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됐나? 발표 났어?”
“오늘 아니고 내일이야.”
경쟁률이 이십팔만 대 일이라고 했다.
아무 조건도 없는, 그래서 무조건 신청하고 보는, 이른바 줍줍아파트라고 했다.
그게 될 리가 있겠어? 라며 시큰둥한 나에 비해
K는 그게 꼭 되려고 한다기 보다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분좋은 상상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내 경우였다면 신청을 하는 순간부터 잔뜩 긴장을 할 것이고 발표가 날 때까지 심장이 나대도록 조바심을 낼 테고 안 될 줄 알았으면서도 막상 낙첨사실을 마주하면 실망하고 속상해 할 것이 당연한 수순인데.
가끔 한 번씩 로또를 사는 것도 K는 같은 이유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월요일에 사서 결과는 최대한 늦게 확인하면서 그 동안 집도 사고 주위에 인심도 쓰고 여행도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K는 지하철 역 앞 로또 명당이라는 가판점에서 당첨된 오천원 복권 두 장을 새 로또와 바꿨다.
“그거 당첨되면 뭐하려고?”
K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일단 건강보험료 내고....!”
“풉!”
이백만 원 연금을 받으며 건강보험료를 이십오만 원 내라는 게 말이 되냐며 내가 자주 투덜거렸더니 하는 말인 것 같아 괜히 찔렸다.
두 세대를 모집한다는 그 곳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넓은 평수라고 했다.
경기도지만 서울 기반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이 곳보다 주변 환경이 좋다고 했다.
게다가 요즘 짓는 아파트라 에어컨 등 기본 가전이 옵션으로 들어가 있다고도 했다.
시큰둥 했었는데 K가 구체적인 얘기를 말할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붕 뜨는 기분이다.
평수가 크니 드레스룸도 있을 거고 바닥재는 포쉐린 타일이라니 청소하기 좋겠다 싶었다.
근처에 낮은 산이 있으니 단추랑 산책하기도 좋을 거고 멀지 않은 곳에 고퀄리티의 대형 쇼핑몰 식당가에서 맛있는 것도 골라 먹을 수 있겠다.
영화관도 있고 천변 산책로도 있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의 초등학교 학군을 얘기하던 상황처럼
당첨의 행운하고 거리가 먼 내가 김칫국을 양푼째 들이키는 기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발표가 나면 바로 이억쯤 있어야 하고 입주를 하거나 세를 놓기까지 두 달여 사이에 완결해야하는 말 그대로 속전속결의 일정을 얼핏 듣기는 했는데 그 발표가 임시휴일 다음 날 인줄 알았던 거다.
그러고보니 K의 말이 영 틀린것만도 아니다.
이후로도 종종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일상을 생각하는 동안은 잠깐씩 설렜다.
그리고 오늘, 그는 문자가 안 온다며 직접 사이트에 접속에서 확인하는가 싶더니
“아! 이사가려고 했는데 못가게 됐네.”
K도 나도, 또 어느 집이 당첨되면 무조건 몰아주자! 라고 했던 아이들조차도 당첨의 행운이 올거라는 기대를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리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냥 잠깐 동안의 기분좋은 꿈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그나저나 우리집 설거지 요정 K의 손 상태가 일주일 전 쯤부터 다시 나빠져서 이번에는 의견을 물을 것도 없이 식세기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 바로 사려다 혹시나 이사를 하게되면 씽크대 공사를 두 번 해야하니 일단 발표 이후로 미뤘었다. (기대를 영판 안 안 것도 아니었나보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지만 둥실 떠있던 마음 붙잡아 넣고
오늘은 식기세척기 주문도 하고 결혼기념일 여행계획도 세우고 일본어 예습도 하고 청소도 해야겠다.
덕분에 일주일은 행복했네
그 일주일 동안 벚꽃이 뭉게뭉게 피었다가 눈처럼 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