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 살 때 우리집은 지하철 3호선 종점 부근에 있었다.
역삼동으로 출근을 하던 K는 강남에서 자주 회식을 했다.
그 곳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집이 멀다는 이유로 보통 2차를 가기위해 일어섰을 때 먼저 간다며 무리를 빠져 나와야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는 했다.
그런데 일찍 나왔으나 어차피 한밤중이 되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늦은 시각 강남에서 오는 버스가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빨간색 광역버스이고 하나는 파란색 M버스였다. 빨간 버스는 대화가 종점이고 파란버스는 중산마을이 종점이기 때문에 나는 빨간버스를 타기를 추천했지만 K는 한사코 파란버스를 선호했다.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파란버스는 동구청을 지나 일산경찰서를 앞에 두고 우회전을 한다.
그러므로 집에 오려면 동구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술에 취한 K는 아늑하고 편안한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늘 우회전을 한 다음이더라고 했다.
그 다음 정류장은 꽤나 멀더라고도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그 곳이 중산마을이었다.
K는 중산마을에 심심찮게 자주 갔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중산마을에 보고싶은 그녀라도 있는 거냐고.
언젠가 걷기운동을 하다가 그 말로만 듣던 중산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여기가 거기구만? 중산마을 그녀는 잘 살고 있나?”
K는 민망한지 허공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초저녁 잠이 들었다 깼다. 열한 시였다. 저녁 약속이 있다며 외출한 K는 아직이다.
내가 또 남편 회식할 때 문자하고 전화하는 그런 아내가 아니다보니, 자고 있으면 오겠지 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열두 시 반이었다.
근래 없던 일이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한참 올린 후에 멀쩡한(멀쩡해보이려고 애쓰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어디야?”
“어! 병점.”
“헐.”
“잠이 들었어.”
짧은 순간 병점이 어디냐, 충청도냐 경기도냐 1호선 종점은 대체 어디냐, 오늘 안에 집에 올수 있는거냐, 등등 온갖 의문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그.. 그래서?”
“가고 있지.”
“어떻게?”
“택시타고.”
“!@#$%^&”
한 시가 다 돼가니 할증이 붙었을 테고 병점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요금이 한 십만원쯤 나오려나? 설마 이십만원은 아니겠지.
잠은 이미 천리만리로 달아났다. 그 와중에도 무사히 오기는 하겠지 하는 마음을 다독이며 거실을 서성거리는데 키패드 누르는 소리에 단추가 먼저 뛰어나간다.
퀭한 얼굴에 머리는 부수수해진 모습으로 K가 단추를 안아들고 들어왔다.
화가나기보다 안도감이 앞서는 마음을 감추려고 한마디 했다.
“이번엔 병점녀야?”
K가 그 때처럼 피식 웃었다. 그러다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그래도 서동탄행을 탄건데 미리 내린 거야.”
그 때까지도 병점은 어딘지 동탄이 병점보다 먼지 모르니 그 말의 의미를 알리 없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천안행 안 탄게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