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숙 Jun 29. 2024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



“그러니까, 당신은 뭐든 익은 생선은 싫어하는 거지?”


일주일에 두 번 일본어 수업이 있는 날에는 점심을 외식으로 한다.

연초부터 시작한 K의 파트타임 출근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는 열한 시 삼십 분에서 K의 출근 시간인 한 시 삼십 분 사이에 식사를 해야한다.

처음 이 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제일 불편한 게 대중교통이용이었는데

지금은 1호선과 4호선 역은 어지간하면 걸어서 다니는게 일도 아니게 되었다.

하여 교육원은 K가 걸어서 다니는 출근코스 중간에 있고 그 곳은 역주변이므로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분식 등 먹을 거리가 지천...

일 것 같은데 또 막상 메뉴를 고르려면 딱히 먹을 만한 것이 없다. 

게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일단 분식과 양식을 제하고 

일식, 이라고 하면 좀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덮밥을 주로 하는 한 집에만 가고

중식은 선택을 했다기 보다는 그냥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중국 식당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그리고 가장 다양하고 선택이 쉬울 것 같은 한식은

순댓국 외에 다른 메뉴가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았다기 보다는 그 중에도 K의 불호 음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그래서 지난 목요일에 짜장면을 먹고 나오면서 내가 물었던 거다.


“뭐, 그렇지, 생선은 회를 좋아하기는 하지. 그래도 익은 것도 먹기는 해.”


한 번인가 생선구이집에 간 적이 있기는 하다.

이면수와 가자미구이를 주문했는데 내가 돋보기안경까지 꺼내 쓰고 생선 가시를 바르고는

큰 살덩이를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K의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 

평소 내가 0.5인분, K가 1.5인분을 먹었고 일찌감치 숟가락을 내려놓은 내가 K가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표정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고보니 그 날 K가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후로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와중에 K는 한 번도 생선구이를 먹으러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코다리찜 역시 그 주변 맛집 중 하나라고 하는데 K의 목록에는 없고 앞으로도 올라갈 예정은 없을 것 같다.


K는 익은 생선을 싫어하고 나는 구이든 조림이든 익은 생선을 좋아한다.

K는 국이 있어야 밥을 먹고 나는 국이나 찌개보다 마른 반찬 종류가 좋다.

아파트 1층 출구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오른쪽 방향을 향하는 나와는 다르게 

K는 확신의 걸음으로 왼쪽을 향한다.

물건을 사면 택이든 스티커든 그대로 두고 될수록 오래 새 제품의 느낌을 유지하는 나와

새 물건, 옷, 자동차까지 택은 물론 비닐, 스티커 등이 붙어있는 꼴을 못보는 K.

심지어 남의 차의 구석에 붙은 몇 년 된 비닐까지 귀신같이 찾아내 떼고야 만다.

가던 길, 익숙한 장소에 가기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늘 새로운 길을 찾는 K는 분명 나와 많이 다르다.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계획형의 J만 같을 뿐 MBTI세자리 글자가 완전히 다르고 

둘의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는 건 같지만 잘 보면 그것도 묘하게 다르다.

집에 들어오면 어지간해서 집 밖에 잘 안나가는 나에비해

K는 말 그대로 풀방구리 쥐드나들 듯 집 안 팎을 들락거린다.

그런가하면 나는 금방 여행에서 돌아오고도 얼마쯤 지나면 다시 떠나고 싶어하는 본능에 몸이 근질거리는데 K는 여행 이야기만 나오면 

‘저 아줌마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으로 갑자기 졸려 죽겠는 듯 눈꺼풀을 내려 감거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는 한다.

내 말 무시하냐, 어떻게 사람이 예의가 없냐, 내 말이 그렇게 듣기 싫으냐, 등 

악을 쓰며 싸우던 것도 오래전 일이고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그는 그냥 나와 다른 사람이려니 한다.


내 마음이 무뎌지는 것처럼 그도 그러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달리

K는 무반응의 다양한 기술을 날마다 새로 발굴하는 것 같다. 

동문서답하기

나, 너, 혹은 우리의 얘기가 아닌, 

전혀 상관없는 심지어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쏟아내듯 말하기.

가끔 한 번씩 내가 유령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고도의 무신경까지.

자주 마음 상했고 가끔 화가 나기도 했고 더러 절망스럽기도 했던 그의 습관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똑같아도 재미없고 지루하겠지만

때로는 온전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K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아주 가끔 있다.







작가의 이전글 참는 게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