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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Jun 30. 2024

바니치킨은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과천에 이십 년을 살았고 그 중 십 년은 15층 아파트의 6층에 살았다.

지하철 역 1분 거리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정남향, 앞 동이 있어 정면으로는 아니지만

맨 끝집이다보니 베란다 옆으로 비스듬히 청계산이 보였고 출입문을 열고 나가면

관악산의 시원한 능선이 눈앞에 확 펼쳐졌다.

그 집에 살 때에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집이라 집구조가 이상하고 

주차공간이 없는 덕분(?)에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베스트 주차러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이 단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무료해서 던져보는 투정이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대공원을 앞마당이라고 하고 

차를 타지 않고도 오를 수 있는 관악산등산로가 여기저기 있어 한동안은 제법 산악인 흉내를 내기도 했었다.

지금은 말하면 속만 쓰린 집값은 덮어 두고라도 

그 곳을 떠난 것이 살면서 가장 잘못된 판단이었던 점은 말하면 입아플지경이다.

그런데 그 많은 장점 가운데 요즘들어 자주 떠오르는 장면은 대공원도 관악산도 아닌

집 앞 바니치킨이다.

바니라는 이름이 프랜차이즈였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파트 출입문에서 다섯 걸음 쯤 위치의 상가 건물에 있었다.

아이방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그 집 주방에서 닭을 튀기는 예쁘장한 사장님이 보였다.

전화로 치킨을 주문하면 창 밖으로 남자사장님이 치킨 봉투를 들고 우리집으로 오는 모습을 실시간 볼 수 있었다.

치킨집이니 치킨을 주로 먹기는 했지만 우리 가족이 기억하는 그 집의 시그니처는 따로 있었다. 

그 것은 굵직한 낙지와 소면을 푸짐한 채소와 버무린 낙지소면 이었다.

맛있다, 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줄 알지만 마땅히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 집 낙지 소면은 특히 K2가 좋아했는데 

호프집이었던 그 집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미성년자였던 아이들과 우리는 자주 그 집에 가고는 했다. 

키가 자그마하고 몸집이 다부진 여자 사장님은 짧은 커트머리에 늘 메이컵을 한 단정한 모습 이었다.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주방을 거의 혼자 담당하며 닭튀기랴 양념하랴 중간중간 다른 메뉴 조리하랴 정신이 쏙 빠질 것 같은데도 똑 부러지게 음식을 만들어 냈다. 

장사가 잘 돼서인지 어느 해엔가부터는 옆 점포의 뒤편 공간을 확보해 테이블을 놓게까지 되었다. 

제법 포장마차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 곳이 좋았지만 본부(?)와 떨어져있다보니 아무래도 메뉴 주문이나 조달이 다소 늦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동네가 온통 개벽을 하는 와중에도 우리집이었던 그 단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재건축을 시작하지 않아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와중에 단지앞 건물들은 새로 생기기도 하고 증축을 한 곳도 있었다.

보통은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장면이라 바니치킨이 있던 안 쪽 골목으로 들어가 볼 일은 없어 그 곳의 안부는 알 수가 없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치킨집 테라스 자리를 보고는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다른 건 몰라도 술마시자는 제안 하나만큼은 5G급으로 잽싸게 돌아오는 K의 반응이 어이없으면서도 어느 새 홀린 듯 치킨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테라스 자리를 보고 들어갔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이 민망해서 대신 실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생맥주를 마셔본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배달치킨 말고 접시에 담아 나온 치킨을 먹어본 게 언제였던가.

다음날 장 트러블이 일어나든 말든 생맥주를 진하게 한 모금 들이키다보니 문득 바니치킨 생각이 났다. 

천정까지 쌓여있는 배달용 종이박스, 기름때가 얼룩진 기름솥앞 벽면, 네 다섯 석 밖에 되지 않는데도 한 테이블에 여섯명이 어찌어찌 구겨 앉아지던 좁은 실내, 사실상 치킨 맛이야 다 거기서 거기였겠지만 우리 식구들은 그 곳을 좋아했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바니치킨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릴 것 같지는 않다.

바니치킨은 우리 가족 모두의 마음속 기분좋은 추억으로 충분하다.

다음에는 민망하든 말든 테라스 자리에 앉아야겠다. 

그렇게 또 다른 추억이 만들어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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