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내가 뭘 들은거지? 했다.
빈말이라도 아내를 위해 그렇게 말해달라고 한들 조선대표 효자 K가 그런 말을 할리는 없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약간의 위로와 통쾌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K의 엄마는 며느리에게 그리 좋은 시어머니는 아니었다.
무뚝뚝한 성격에, 핏줄 외의 사람들에게는 더러 배려없는 직언을 던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밉지 않은 말로 그 즉시 받아칠 수 있는 성향이라면 좋았겠지만
말도 못하고 그렇다고 쉬이 잊어버리지도 못하는 소심쟁이다보니 시어머니 앞에서는 늘 주눅이 들었다.
신혼 집들이 때 상을 다 차린 후 밥을 푸려는데 밥솥 안에는 취사버튼을 누르지 않아 물에 잠긴 생쌀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당황해서 다리가 다 후들거리는데 어머니는 손님들 아랑곳없이 며느리의 정신머리에 대해 실랄하게 비난을 했다.
이십 여년 전 추석 준비를 하느라 사촌 형님을 비롯한 며느리 셋이 전을 부치고 있었다.
부쳐내도 끝이 없이 나오던 녹두 반죽은 종로빈대떡보다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세 동서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노동의 피로를 버티고 있었고 그러다 김씨네 남자들 얘기로 흘러가다가 각자 부부간 호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두 형님들이 얘기를 하고 내가 이어받았다.
“딱히 호칭이 없는 것 같기는 한데 언젠가 씻고 나와서는 ㅇㅇ아! 수건 갖다줘! 하더라구요.”
어느 형님이 욕실에 수건이 없었냐고 물었고 내가 아마 수건이 젖어 있었나보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야! 요즘 날이 얼마나 좋은데 그 때 그 때 빨지 젖은 수건을 그대로 두냐?”
한 편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던 어머니가 대뜸 호통을 치는 바람에 순간 얼어붙었다.
창피하고 민망하고 억울한 마음이 복잡하게 엉키면서 심장은 가파르게 뛰고 얼굴은 터질것처럼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때 K가
‘엄마, 다른 음식 먹는동안 금방 하면 되죠, 라든가 엄마! 에미가 새 수건을 걸어놨는데 내가 샤워하면서 물을 튀겨서 그랬던 거예요.’
라고 나서줬으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생각은 그로부터 삼십 년도 훨씬 지났을 때 불쑥 떠오르고는 했다.
몸이 불편해진 후 어머니 성정이 많이 유해진 것처럼 보였다.
시댁에 갔을 때 점심식사를 마친 후면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는 한다.
때로는 조금 과감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응석부리는 투의 목소리가 튀어나올 때도 있었다.
말해 놓고 아차 싶어 어머니 표정을 살피면 농담으로 받거나 피식 웃어넘기기도 했다.
어머니가 기운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달라진 줄 알았다.
예전보다 용감해지기도 했고 연륜에서 오는 약간의 뻔뻔함도 생긴줄로 알았다.
추석에 시댁에 갔을 때 놀랍게도 어머니가 싱크대 앞에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식탁앞 어머니 자리에 놓여있던 휠체어도 보이지 않는다.
걱정스러움 반, 희망적인 마음이 반이었다.
한 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아 한참씩 입 안에서 우물거리기도 했는데
그 날 어머니는 목소리에조차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아직 밥그릇조차 챙기지 못한 내게 아들 국그릇에 만두 더 놓으라고 성화를 하고,
나는 아직 식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들 밥 더 주라고 또 채근을 한다.
어쩐지 그리 낯설지 않은 이 상황에 기시감마저 들었다.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머니의 예전 모습이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은 긴장이 되고 대화는 갈수록 옹색해졌다.
급기야 어머니의 어떤 한 마디가 칼끝처럼 마음을 찔렀다.
집으로 돌아올 때 차를 타자마자 잠을 청했다.
오전에 퍼붓던 비가 개자 말끔한 하늘에 듬성듬성 낀 구름이 더 선명해졌다.
“어머니가 기운이 나셔서 좋기는 한데...독설까지 같이 돌아온 거 같네?”
별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혼잣소리처럼 했던 말에
“우리 엄마는 기운이 나면 안 돼.”
라고 말하는 K의 즉각적인 반응이 의외이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 말이 내게 주는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 때도 그랬으면 좋았잖아.’
라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다, 울엄니 성격에 그 소리를 듣고 가만있을 리가 없으니
더 크게 확대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K의 의미있는 방관이었을 거라 믿는다.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