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와 고모부, 그 때 진짜 대단했어요. 그 큰 캐리어를 밀면서 광장을 뛰어가는데 와.”
육 년전 동생 부부와 동유럽 여행에서 돌아올 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의 일을 떠올릴때마다 올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해는 동생부부의 결혼 20주년이자 K와 나의 30주년인 해였다. 우리는 오 월에 이미 파리를 거쳐 스페인 포루투갈로 기념여행을 다녀왔으므로 그 여행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사실상 처음부터 우리가 끼게 될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올케의 언니 부부 두 팀과 함께 호주에 가기로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언니에게 차례로 일이 생겨 결국 여행을 취소할 상황에 놓였더라고 했다. 그 무렵까지 유럽여행을 해 본적 없었다는 올케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여행사 사이트를 뒤지던 중 기간이며 비용이 맟춤한 동유럽 패키지상품이 눈에 들어왔고 그걸 우리한테 같이 가자고 했던 터였다.
지금도 잘 모르겠는 것은 명색이 결혼 기념일 여행인데 왜 둘이 아니고 굳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는지였다. 나야 평생 해볼지 말지 한 동생네와의 여행이니 좋기만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여행은 좋았다.
처음 해보는 패키지 여행이란 것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기대했든 그 이하였다.
처음이었으니 비교할 무엇이 없기는 하지만 그 한 번의 경험으로 봐서는, 어떤 여행상품이 됐든 담당 인솔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그 여행의 성패가 크게 나뉜다는데 우리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디에, 어떤 가이드가 함께 하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 라는 것도 그 한 번의 여행에서 얻은 큰 깨달음이 되었다.
우리는 ‘찰’하면 ‘떡’하고 ‘쿵’하면 ‘짝’하는 여행소울메이트였다.
저녁마다 가뿐하게 비우는 와인 한 병에도 행복해했고, 자유시간에 외국인들이 북적거리는 광장에서 자유로운 포즈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사춘기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돌려막기 하는 식당에서 음식투정을 할 때에도 합심해서 투덜거렸고
누가 하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지기도 했다.
특별히 걸음이 느린 사람도, 혼자 앞서가는 사람도 없었으며 예쁜 걸 보면 그냥 못 지나치는 아내들을 상점 밖에서 기다리며 구시렁거리는 남편들도 비슷했다.
그렇게 얼결에 동유럽 다섯 개 나라에 점을 찍고 마지막 날에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그 무렵, 오랜시간 비행을 힘들어하던 K가 한 가지 꼼수를 쓰게 되었는데 그 것은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비상구 좌석을 부탁하는 거였다. 비상구 좌석은 유사시 승무원을 도와 승객의 탈출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앉을 수 있다고 했으니 그 말은 곧, 젊고 건장한 남성을 뜻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K는 그 때 오십 대였으니 젊지도 체격이 건장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나는 남성도 아니었으니 그게 되겠나 싶었다.
그런데 그 것이 오는 비행기에서 통했으므로 그는 가는 비행기에서도 반드시 그 좌석을 확보하리라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에 동시에 버스 여러대에서 승객을 토해내듯 내려 놓았다.
그 시기는 세계 곳곳에 테러 위험에 대한 경비가 삼엄해지던 터라 공항건물에서 꽤 먼 거리에서부터 걸어 가야 했다.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자 본인 캐리어에 내 것까지 양손으로 밀던 K의 걸음이 빨라진다. 동생 부부와 나도 열심히 따라 걸었다. 그의 걸음은 점점 빨라져 거의 뛰는 수준까지 되었다. 나는 땀을 삐질 흘리며 그 걸음을 따라 뛰듯이 걸었지만 동생부부는 어느 지점에선가 포기를 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인파가 몰리기 시작하자 탑승구로 가는 가이드라인을 자꾸 돌려서 처음 거리보다 점점 더 멀어지더라고 했다.
어느 사이에 우리는 같이 뛰고 있었다. K의 얼굴이 땀으로 번지르르하다. 숨을 헐떡이며 체크인 창구에 도착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동생네 좌석까지 확보할 방법은 없었지만 결국 K는 원하던 좌석을 차지하고야 말았다. K가 땀 흘린 결과로 나도 그 옆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마지막 날, 귀국편은 저녁 비행기라 애틋한 마음으로 암스테르담 거리를 반나절 동안 돌아다니다가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모바일로 체크인은 했지만 수화물은 셀프시스템이 없어서 결국 체크인 줄에 섰다.
K는 이럴거면 모바일체크인 미리할 필요도 없었다며, 인천공항만한 곳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다 그 때 생각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육년이나 지나 지금은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서 안 될거라는 내 말에도 그는 결국 직원에게 비상구 좌석으로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그건 돈을 내야 가능할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쩐일인지 말끔하게 생긴 항공사 직원은 흔쾌히 알아봐주겠다고 한다.
K는 봤지? 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왔을 때 잘생긴 네덜란드 직원이 모니터를 보며 체크를 하더니 금세 쏘리라고 말하며 비상구 좌석은 다 찼다며 세상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좌석 지정을 할 때 한 칸의 맨 뒤쪽 두 자리인 곳으로 했었다. 장점은 세 좌석일 경우 안 쪽 승객이 들고 날 때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불편이 없다, 와 화장실이 가깝다는 점.
화장실이 가깝다는 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둘만 앉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첫 번째 식사를 맨 끝자리였던 우리에게 먼저 주었다.(커피와 그 다음 식사는 맨 꼴찌로 받기도 했지만) 먼저 먹고 먼저 양치하고 등받이를 젖혀도 뒷사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을 마주쳐야 하는 일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자리도 괜찮네.”
비상구 좌석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한 K가, 이제는 장거리 여행은 못하겠다며 내내 부르퉁 하더니 식사를 마치고는 만족한 듯 말했다.
“그치? 어차피 퍼스트클래스에 탈 수 없을 바에는 이 자리에 앉으면 되겠지?”
“.......”
그렇다고 그 말이 다시 장거리 여행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그의 꾹 다문 입술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나는 이코노미석도 괜찮고 가운데 자리도 상관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