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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런던에 가고 싶었을까?

영국 런던

by 이연숙



일본어 멤버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갔을 때 보통은 각자 일본어 한자 공부에 대해 서로 겨루기라도 하듯 어려움을 토로하기에 바쁘다.

한자책 한 과의 내용을 그대로 노트에 옮겨 적어 일일이 사전찾아가며 꼼꼼이 공부한다는 A

연습문제에 나오는 문장들을 번역기로 번역을 한 후 원어민의 발음을 통째로 녹음한다는 B

일본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집중할 뭔가 필요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C

(사실상 계기는 나와 가장 흡사하지만 두 학기 선배인 C의 실력은 거의 고급 수준)


“나는 이제 그만 해야될 거 같아. 도무지 발전이 없어.”


라고 내가 운을 떼면 나를 붙잡을 사명이라도 가진 것처럼 나도 처음에 그랬다며, 나도 아직 잘 모른다며 열심히 침 튀겨가며 말린다.

발전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뭣보다 딱히 일본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없는 터라 그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진심이긴 하지만 내가 뭐라고, 게으른 열등생의 징징거림을 한사코 뜯어 말려주는 그들이 내심 고맙기도 하다.

그러다 누군가 문득 영국 여행은 어땠냐고 물었다.

순간 얼떨떨해서는 누구한테 묻는건가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A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맞네, 나 영국 갔었지.’

나한테 묻는 말이라는 건 알아차렸는데 딱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는 내가 어이없어서 실소를 했다.


“어, 어 그러니까 그게 기간이 너무 짧아서 잘 기억이 잘....”


사실상 그 질문은 내 여행이야기가 궁금했다기보다는 내게 말할 기회를 주느라 했던 것처럼

그들은 금세 다른 화제로 돌아가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시어머니 드릴 저녁 준비 해야한다며 B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않았더라면 저녁까지 먹고 밤이라도 새울 기세였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행의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어디에 갔었는지 뭘 봤는지는 선뜻 떠오르는 것이 없고 식당이며 마트 심지어 교통비까지 런던의 미친 물가에 이맛살을 찌푸렸던 기억만 뚜렸하다.

런던이 아무리 좋아도 여기에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과 함께.

그럼에도 신기한 건 난생 처음 가본 그 곳이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낯설지 않을 뿐 아니라 어딘가는 익숙한 기분까지 들어서 불안하거나 긴장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과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도움을 청했을 때는 오버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유용한 정보를 주었다.

호텔 프런트를 지나칠 때마다 과하게 알은체를 하지 않아서 편했는데 그 것이 누군가에게는 ㅇㅇ호텔 직원이 불친절하다고 느껴지기도 한 모양이다.


오래전 지역에서 개설한 여행작가강좌에 갔던 적이 있었다.

첫 시간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기소개를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꼭 한 번 런던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던 30대 초반의 여성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10대 때 아빠의 직장 때문에 런던에 육개월 가량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 좋았다고 했다. 언젠가 꼭 다시 가고 싶었는데 학업과 직장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며 만약에 다시 가게 된다면 1년 쯤 살고 싶다고 그러면서 빌브라이슨의 유럽산책 같은 여행기를 쓰고 싶어서 이 수업에 왔다고 말했다.

세상에, 점심에 뭘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20년도 더 된 그 얘기를 기억하고 있다니. 아마도 그 때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런던이 무척 궁금해졌나보다.

벌벗사에 영국인 피터가 나오면 늘 죄인이 되고마는 그들의 역사도 궁금하고,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어느 덧 해가 뜨지 않는 나라로 가고 있다는 얘기도 관심이 생겼다.

특히나 내가 누군가의 농담에 반응을 할 때마다 ‘영국식 농담을 좋아하는군.’ 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건조하고 구태의연하다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게 재미있다.


20241214나는 왜 런던에 가고 싶었을까.jpg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왜 하필 영국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번 가봤으니 런던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겠네? 라고 물으면 그건 단연코 아니다.

만약에, 갑자기 나도 모르는 조상이 내게 남긴 유산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거나 로또에 맞아 유럽여행을 하게 된다면 나는 또 영국에 가고 싶다.

이번에는 런던이 아닌 어느 시골 마을이라면 더 좋겠다.

뜻대로 되지 않았어도 망한 기분이 들어도 여행은 그냥 여행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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