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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선생이 선택했던 투어[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by 이연숙

암스테르담에서 마지막 날은 날씨가 좋았다.

비행기는 저녁 여덟시이고 그 날은 시간에 쫓길 일도 없으니 아침 식사를 한 후 일찌감치 짐을 맡기고 느긋하게 거리를 걸었다.

전날, 토요일밤의 광란의 흔적은 거리에 쌓이거나 흘러다니는 쓰레기가 말해주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인도와 차도와 트램길과 자전거 도로 중 자전거길이 제일 세다고 했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와 상관없이 ‘차가 없으면? 간다!’ 가 보편적인 질서라던 런던하고는 또 다르게 이 곳에서는 자동차도 사람도 자전거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평지가 많은 이 나라 사람들은 걸음 떼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전거를 탄다고, 고급 자전거가 아닌 쌀집 자전거로도 겁나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그야말로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난다고 했다.

휑한 일요일 아침 거리를 걷자니 전날 물 사러 몇 번씩 들락거렸던 골목들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전전 날에 물 한 병을 1유로에 샀다던 마트는 결국 찾지 못했다. 길눈 밝은 K가 마치 도깨비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그 날 받았던 물 영수증까지 펼쳐 보며 도대체 그 마트가 어디로 간거냐며 그르릉 거렸지만 날이 밝았어도 그 집은 마법처럼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직 반나절의 시간이 남은 투어버스 승차장소를 전날 확인해 두었었다.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중앙역 오른 편으로 돌아 큰 도로를 건너 승강장으로 갔다.

언제 또 오겠나 싶은 마음이 드니 신호등 불빛 하나, 바다로 떨어지는 아침 햇살 한 줌, 어딘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애틋하게 느껴진다.

버스의 이층 오른쪽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는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다이아몬드 공장과 램브란트의 집이 있는 정류장에 내렸다. 예약을 하지 않았으니 입구까지만 들어갔다가 건물 외관만 돌아보고 하릴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 건물을 돌아서니 여기저기 이제 막 천막을 치는 광경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그 주변에 무슨 플리마켓인가가 있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저런건 누가 사겠노 싶은 낡고 심란한 모양의 옷들도 있었고 빈티지 레코드판, 내 최대 관심사인 빈티지 그릇들도 한창 진열 중이었다. 걷다가 스피노자 동상앞에서는 친한 것처럼 사진도 찍고 운하 위를 건너는 다리 위에서 K는 자기 보트에 자전거를 싣고 서서 가는 여성이 멋져보이더라며 사진까지 찍었다고 했다. 파란 하늘에 몽글몽글 흐르는 구름에 겉면이 특이한 모양의 건물들, 그 사이사이를 흐르는 운하가 어느 방향에서 봐도 감동적인 풍경이었다.

자질구레한 장식품들을 파는 노점에서 이 곳에 올 때부터 줄곧 떠오르던 플란다스의 개, 네로의 미니미 도자기 신발을 발견했다. 유로현금 가진 것이 없었지만 주머니에 2유로 동전이 있었고 신발의 가격은 1.5유로였다. 여행지마다 사모으는 2유로짜리 티스푼을 1.5유로 카드 결제 함으로써 동전을 털고 뿌듯한 마음으로 다음 버스를 탔다. 코스 지도를 보며 K가 물었다.


“어디서 내릴래?”

“하이네켄 한 번 가볼까?”

“어제 못왔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해보게?”

“해보지 뭐.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에이, 그게 되겠어?”

“믿져야 본전이지 뭐. 안 된다고 하면 버스타고 오면 되지.”


하여 일말의 기대는 없었지만 하이네켄에 내려 사람들을 따라가 줄 뒤에 섰다.

아마도 일정 인원이 모이면 순차적으로 한 그룹씩 입장을 하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예상대로라면 다음 순서에 입장하게 될 것 같았다. 갑자기,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슬그머니 줄에서 빠져 옆 쪽에 마련된 대기 공간으로 갔다. 그리고는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어제 티켓인데 못와서 오늘 왔는데 들어갈 수 있냐고. 그게 되겠냐 싶은 마음에 목소리까지 잔뜩 쪼그라들었는데 의외로 그녀의 대답은 시원하게 “물론이지.” 였다.

이게 웬일이냐 싶어 K도 나도 그 직원을 끌어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아까 섰던 줄은 이미 입장하고 없었고 그 사이 새 줄이 생겼으며 사람이 늘어 우리가 있는 대기줄 뒤에도 사람들이 서 있었다.

생각보다 줄은 빨리 줄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영어로 뭐라뭐라 하는 하이네켄 역사와 기타등등 안내를 듣고 다음 방에서 다음 방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 걸었다.

어느 방에선가 빨간색 별 그림이 그려있는 작고 길쭉한 맥주잔에 시음용 맥주를 나눠주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그 날 만큼은 장트러블 걱정도 넣어두었다.

화려한 영상이 있는 방에 숙성방 등등을 거쳐 드디어 가지고 있는 토큰 수 만큼 맥주를 준다는 펍에 도착했다. 토큰은 어차피 1인당 두 개씩이었으므로 우리는 각각 두 잔씩 마실 수 있었다. 작은 테이블을 두고 어제 영국에서 왔다는 아버지와 아들 팀을 만나 시끄러운 와중에 스몰토크를 나누는 동안이 K에게는 아마도 이 여행의 최고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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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미술관 티켓 취소하고 비싼 티켓으로 다시 구입했던 것, 맥주투어 날리고 버스 크루즈 투어는 내가 괜히 하자고 해서 고생만 했다며 자책했던 K, 망했다 생각했던 여행이 순간 오히려 행복한 기억을 오래 남기게 된 것 같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의 과정을 생각하다보니

‘처음이라 몰라서 그랬어. 다음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악마의 꼬임 같은 소리가 내 안에서 자꾸 속닥거린다.

K가 선택했던 투어는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다음에는 체코에 가서 맥주자전거를 타는 장면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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