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K1의 시드니 출장계획에서 시작됐다.
연초부터 올해 해외출장의 기회가 몇 번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첫 번 째가 호주가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출장여행에 같이 가서 평일에 자기가 일을 보는 동안
공주(K1의 예쁜 각시이자 나의 며느리(난 어쩐지 이 말이 어색해서)와 여행을 하다가 주말에 함께 하자는 얘기였다.
아직 정확히 출장일정이 잡히지 않았고 날짜가 잡힌다면 아마도 출발 3주 전 쯤이 될거라고, 게다가 그 기간이 대충 4월 말에서 5월 초가 될 거라고 하니 모르긴 몰라도 여행경비가 꽤나 들겠다는 각오만 다지고 있었다.
호주에 갈 거라는 말에 대부분 사람들은 ‘왜 호준데?’ ‘호주에는 뭘 보러 가나?‘ ’호주에 맛있는게 있나?‘ 또는 ’여행지를 호주로 결정한 이유는 뭔가요?‘ 라며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듯이, 솔직히 나도 잘 몰랐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한 번 가보든가, 라고 막연히 생각한 적은 있지만...? 있었나?
뭐 아무튼 호주라고 하면 몇 해전 대형 산불을 피해 아기코알라를 안고 불길 속을 뛰던 여성의 영상이 먼저 떠오를 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미국에 살았던 일 년을 빼면 K1과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처음으로 아들 부부와 여행을 하게 됐다는 기대가 조심스러움보다 조금 더 컸다.
드디어 여행일정이 잡혔고 어느 새 조심스러움은 스멀스멀 사라지고 기대감이 점점 더 커져갔다.
출발 날짜는 4월 말도 아니고 5월 첫 주, 대한민국이 한 바탕 들썩할 올 해 두 번 중 하나인 황금연휴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이제까지 지불했던 요금중 역대급 티켓값을 결제하고도 걱정은 커녕 소풍날 기다리는 애처럼 설렜다.
출장에 여행을 붙인 혜택이라는, 즉 출장자 1인 항공요금을 절약해본다는 전략(?)은 출장 계획자체가 무산되면서 ’출장여행‘에서 출장을 뺀 ’여행‘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날짜가 임박해서 구입한 티켓값이 얼마였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행은 시작됐다.
티켓값이 역대급이었던 것에 비해 기내 서비스는 뭘 기대했든 그 이하였다.
무엇보다 아홉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기내식은 달랑 한 번, 그것도 작은 박스에 담긴 스낵수준이었다. 처음으로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리즈번 거쳐 시드니공항에 내려 숙소에 짐 대충 풀어놓고 거리 구경을 나온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나는 불현 듯
’여기서 한, 한 달쯤 살아보고 싶어. 어쩌면 일 년쯤 살 수 있을 것도 같아.‘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대체 호주에서 뭘 봤다고, 뭘 안다고.
숙소에서 서큘러키까지 걸어가는 동안 무심하게 지는 노을은 또 왜 그렇게 황홀한지.
달력에서 엽서에서 TV에서 혹은 미션임파서블 2에서 시드니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이던 오페라하우스 앞에 내가 서 있었다.
K는 말했다.
이제 오페라하우스를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또 물 위에서 그리고 밤에도 낮에도 날마다 보게 될 거라고.
정말 그럴까 했는데 정말 그랬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가 불쑥불쑥 나타났다.
내가 시드니에 있구나 느낄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여행만 다녀오면 친구를 하나씩 잃었다는 말에 K2가 해 준 조언을 마음에 새겼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적절하게 개입하고 산뜻하게 맡겨 두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덕분인지 여행일정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고 나는 느꼈는데 아그들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음 날에는 블루마운틴에서 곤도라를 타고
그 다음 날에는 사막에서 모래썰매를 타고 동물원에서 처음 만나는 동물들을 봤다.
아무리 좋아도 울안에 있는 그들이 정말 만족한지 알 길은 없지만
이제까지 봤던 동물 중에는 그래도 행복한 일상을 사는 것 아닐까, 라고 우겨본다.
호주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떠오르지 않은 대신
우리는 날마다 다른 식당에서 다른 피시앤칩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물론 이거다 싶은 로컬맥주는 몰랐지만 하우스 맥주를 곁들여서 말이다.
그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신기하게도 각각 식당마다 맥주맛은 달랐고 피시앤칩스의 맛이나 모양 또한 같은 곳은 없었다.
그런가 하면 기대하지 않았던 발견도 있었다.
”시드니에 가면 삼 대 커피를 사드리겠습니닷!“
잔돈 착오를 커피로 대신하겠다고 했던 공주의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었다.
커피를? 호주에서?
잔돈착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호주가 나름 커피부심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그 때서야 알았다.
롱블랙, 플랫화이트 등 생소한 커피이름에서부터 커피에 관한한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느껴졌다.
세 곳 카페 커피는 제각각 개성이 있었다.
극강의 고소함이 감동적인가하면 브랜디인지 위스키인지 모를 독특한 향이 일품인 커피도 있었고 전체적인 풍미가 진한 것이 특징이었던 카페에서는 브런치와 함께 했다.
여행이 끝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여행은 ’어디에‘ 보다 ’누구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절감했다.
이 여행의 시작은 아들의 출장이었으나
그 끝은 이제부터 두고두고 풀어나갈 끝없는 우리만의 이야기로 마무리 됐다.
나는 행복했는데
그대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2025.5.3~11. 호주 시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