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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거나 여행지같은 곳에 살거나

by 이연숙


“이제 뭐 또 가겠어? 이 번이 마지막 여행이었지.”


여행 뒤풀이를 핑계로 아이들과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샀던 초콜릿이며 선물을 늘어 놓으며 내가 한 말인데

기분탓인가? 어째 갑자기 조용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더니 K2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작년에도 들었던 말 같은데에...”


작년, 런던에 갈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 여행간다고 용돈 주고 그런거 한 적 없었는데 그 말 때문이었는지 K2가 예쁜 봉투에 빳빳한 파운드화를 담아 주었었다.

‘아하, 마지막 여행이라고 하니 특별히 큰맘을 먹었던 거구나.’

생각하니 미안하고 머쓱해졌다.


“그러네? 근데 뭐 이제는 돈도 없고 체력도 달려서 갈래도 갈 수가 없지. 약봉다리 바리바리 짊어지고 여행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면서도 여행유튜버들이 주사위를 던져서 정해진 장소로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우와, 좋다. 나중에 저기는 꼭 가봐야지.’ ‘저렇게 현지인들과 친해지기도 하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 참 평화롭구나.’ 등등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이탈리아에 못 가본 K를 위해 그래도 로마는 가봐야지. 혹은

멀리 아니더라도 K2부부와 6인 완결체로 홍콩 거쳐 마카오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라며 종종 실현가능성 없는 꿈을 꾸기도 한다.


작년 가을 무렵 B언니가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됐다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아파트이지만 앞 뒤로 건물이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베란다 앞에는 철마다 풍경이 바뀌는 나지막한 산이 있어서 단독주택이나 다름없다며 뿌듯해하던 언니였다.

게다가 무려 서울시에 있으면서 공기도 좋고 교통 편리한 건 말할 것도 없어 시내에 나가는데 삼십분이면 충분하다며 시골(?)사는 나의 염장(?)을 지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니는 긁을 의도가 없었지만 소심한 내가 스스로 긁히기를 여러번이었지만.

갑자기 무슨 이사냐고 묻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니의 브리핑이 시작됐다.

도심 외곽에 있는 타운하우스에 귀하다는 전세 매물이 나왔고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일단 전세로 살아보고 좋으면 매매를 할 수도 있다는)

일층은 거실과 주방, 이층은 방 하나와 거실, 삼 층은 방 두 개 거기에 보너스로 다락방까지 있다고, 앞 마당에 전용 텃밭도 있고 원하면 주변 텃밭도 이용해도 된다고

유나(언니가 나를 부르는 이름)가 글쓰기도 딱 좋다고 말하고는

그 말을 했다.


“여행 안 가도 될 것 같아. 여행지 같은 곳에 사니까.”


그 말은 그 무렵 내가 틈만 나면 K의 귀에 대고 속삭이던 말이었다.


“당신은 여행 싫어하니까 그냥 여행지 같은 곳에 살면 좋잖아. 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야트막한 산이 있거나 큰 공원이 근처에 있는 그런 동네 말이야.”


은행강도를 하자는 것도 아닌데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귓가에 대고 말을 할 수밖에 없는데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는 하다.

한 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것이 과천집에서 십 년이었고 열 한 번의 이사 중 대부분은 사 년 혹은 오 년, 심지어 육 개월만에 이사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 것을 주도한 쪽이 항상 나였기 때문이다. K의 직장 발령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가 ‘집이 불편해서.’ 였던 경우가 많았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거기에 불을 당기는 요인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이, 내가 팔고 나오기만 집값이 두 배 세 배 뛰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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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이사는 초특급으로 진행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시간 거리의 그 곳에 지하철 두 번 버스 두 번 갈아타고 갔다.

집은 일층부터 다락방까지 언니의 묘사 그대로였다. 그 중에도 언니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옥상테라스는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어쩌면 거기서 날마다 노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텃밭은 옥상에도 있었는데 내가 그 곳에 산다면 나는 옥상난간을 따라 작약을 빼곡이 심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계단 오르내리느라 다리 아프겠다고 괜한 트집을 잡으면서도 언니집에 자주 오고 싶었다.


그나마 시댁 꽃밭에 무성하던 작약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됐다.

지난 봄 역시나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됐던 시어머니는 연립으로 가느라 그대로 두고 온 꽃나무들이 아까워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 안타까움은 오히려 내가 더 해서


“어머니, 지금이라도 가서 작약만이라도 파 간다고 하면 안 될까요?”


했더니


“내가 몸이 성하면 벌써 파왔지.”


하신다.

그나마 차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던 어머니의 꽃밭조차 이제 볼 수 없다 생각하니 마음이 우울해진다.

오늘 친구 만나러 간다고 이발도 하고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간 K가 들어오면 다시 한 번 졸라봐야겠다.


“내가 이제 여행을 하면 얼마나 하겠어. 우리 그냥 여행지 같은 곳에 가서 살면 안 될까용?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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