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화장실에 불이 켜져있다. K선생이 방금 볼 일을 보고 나간 모양이다.
냉장고에서 문열림 경고음이 들린다. K선생이 물을 마시고 들어간 모양이다.
K가 설거지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는 동안 주방 수도밸브는 최고 온도로 줄곧 틀어진 채다.
가끔은 그렇게 물을 틀어놓은 채 화장실에도 다녀온다.
그가 일어난 식탁 자리에는 먹은 약 빈캡슐과 봉지가 남아있기도 하고
저녁 산책을 나가는데 TV 속 앵커는 여전히 근엄한 표정으로 뉴스를 전하고 있다.
외기 온도가 26~7도까지 오르는날에도 낮잠을 자고난 K의 침대온수매트는 여전히 열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외출한 동안 빨갛게 켜져있는 그의 방 멀티탭을 꺼놓으면 집에 와서 노트북 충전이 다 안 됐다고 투덜거린다.
전기 좀 아끼자고 말하면 요금 그 까짓거 얼마나 나온다고 그러냐고 한다.
돌아가신 큰이모의 영향인지 나는 지금도 수압까지 좋은 수도에서 물이 콸콸 흘러 넘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물 그렇게 많이 쓰면 나중에 죽어서 지옥문 앞에서 평생 자기가 쓴 물 다 마셔야 들어갈 수 있다는 이모 말로 협박을 해보지만 전혀 타격감은 없다.
어렸을 때 한 지붕밑에 다섯 세대가 살 때 새로 이사온 젊은 언니가 매일 드라이기를 쓴다며 저게 전기 엄청 잡아먹는다며 안절부절 못하던 엄마에게서는 전기낭비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을 뿐 열정적인 지구수비대라든가 환경지킴이 라서는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다고 하던가.
K가 머물렀던 자리는 그다지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머문자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아름다운 사람이 아닌 건 아니... 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K의 코골이가 심해서 각자 방을 쓴지 십 년이 되어가지만 바로 귀옆에서 들리지 않을 뿐
그의 방에서 들리는 코고는 소리가 나면 K가 거기 있나보다 한다.
여섯 시 반, 아침을 차리거나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면 코고는 소리라도 들려야한다.
그러다 문득 검진을 하러 병원에 가는날인 것이 생각났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K가 없는 아침의 적막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방에서 나왔다.
언제 일어나서 샤워까지 했는지 욕실에는 전등은 꺼져있고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벗어놓은 반바지와 티셔츠는 침대모서리에 걸쳐 있었다.
나름대로 정리를 한 것 같은 침대이불은 삐뚜룸히 한 쪽으로 쏠려있었다.
서재방에는 어쩐일로 멀티탭 전원이 꺼져있었다.
보던 화면 그대로 정지시켜놓던 노트북도 닫혀있었다.
매일 그랬을 그의 공간 풍경이 그 날 따라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갑자기 울컥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렸다.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가려다 주방에 눈길이 멈췄다.
테이블 위에 샐러드접시 두 개, 연두부 접시 두 개와 누룽지 볼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인덕션 위에는 누룽지를 넣어 놓은 편수 냄비가 올려져있었다.
그 장면을 보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난데 누룽지에 불 좀 켜줘.”
“아 예 예 예~ ”
냉장고 문열림 경고음이든 끝도 없이 쏟아지는 수돗물 소리든 아무도 없는 욕실에 켜 있는 전등이든 그건 모두 K가 곁에 있다는 의미다.
냉장고 문 닫으랴 수도 잠그랴 욕실 불 끄랴 내가 좀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막한 아침보다는 수런스러운 소리가 나는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