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여행을 앞두고 캐리어를 사기로 했었다.
몇 번 보수를 받아서 사용하던 K의 캐리어가 망가진 이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은 이유에 여행 또 얼마나 하겠냐며 새로 구입하지 않았었다.
실제로, 예상하지 못했던 펜데믹 상황으로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캐리어는 잊고 있었다.
작년에 런던에 갈 때에는 K2에게 화물용 캐리어를 빌렸다.
구입해놓고 정작 본인들은 사용해 본적이 없다는 그 것을 끌고 다니면서 K는 내내 투덜거렸다.
바퀴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잡는다고 했다.
모름지기 캐리어라고 하면 양손으로 밀면서 냅다 달릴 때 물아일체가 돼야 하는 거 아니냐며, 아마도 십 년전 동유럽 여행에서 돌아올 때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달릴 때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 때 그 트렁크가 엄청 고급제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을리 없다는 건 안다.
작년 십이 월에 제주도에 갈 때에도 역시나 K2네서 이번에는 기내용 캐리어를 빌렸다.
이번에는 바퀴가 마음에 들었는지, 보라며 이정도로는 매끄럽게 굴러야 하지 않겠냐며 괜히 빈 바닥에 캐리어를 굴리고는 했다.
그리고 호주여행이 계획 됐을 때 내가 캐리어를 사자고 했다.
다용도실을 잘 정리해서 둘 곳을 마련하자고 구체적으로 얘기했고 집 근처 백화점과 쇼핑몰에 실제 제품을 보러 나가기도 했다. 물론 K도 동의한 일이었고 자기 것을 사는 일이라서인지 나는 파란색이 마음에 드는데 그는 한사코 카키색, 군용느낌이 나는 모델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바퀴 품질에 워낙 민감하니 브랜드는 정해놓고 일단 세일할 때를 기다리면서 인터넷에서도 찾아보기로 했다. A브랜드의 우리가 마음에 드는 라인의 제품 가격은 정상가가 사십만원 후반대 였고 두 곳 매장 모두 세일을 하면 삼십오만 원 정도 될거라고 했다.
조금 미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하는 인터넷 쇼핑은 B와 C, 딱 두 사이트뿐이다.
여러 곳을 뒤져 가장 저렴하면서도 리뷰가 좋은 제품을 찾아내는 과정을 감수해야 좋은 쇼핑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것도 성격 탓인지, 나는 주로 팬놈만 패는 편인가보다.
한 곳만 집중적으로 파다보면 할인이며 쿠폰 등 정보가 많아지고 그러는 동안 포인트가 쌓이며 등급이 올라가면 포인트 비율이 높아지는 맛에 다른 데 눈을 돌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하여 B와 C중에서도 특히 C몰에서 점찍어둔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혜택 큰 세일을 기다렸다.
어느 날 아침, 마침내 그 날이 왔다.
기다리는 동안 포인트는 오만 점이 넘었고 방송제품 할인이 무려 20%나 되는데다 결정적인 것은 평소에는 5% 가끔 7% 청구할인이 있을 뿐이던 카드가 이번에는 10%나 즉시할인이란다. 게다가 그 카드는 결제전 할인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7%가 추가로 할인되는 카드였다.
‘에헤라 디여~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
두 번 세 번 다시 보고 최종적으로 지불 금액이 이십 만원 정도라는 걸 확인한 후, 화장실에 앉아서 냅다 결제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아침 식탁에서 이 기쁜 소식을 K에게 알렸다.
“돈 벌었다? 세상에 오십만 원 짜리를 이십만 원에 샀지 모야?”
워낙 표정에 변화가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하는 말에 즉답을 하지 않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째 이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같은 그의 표정에 김이 빠졌다.
한 템포 쉬고 양배추 샐러드를 한 입 물고는 K가 말했다.
“그게 번 거야? 쓴 거지.”
“엥? 뭐래?”
“그렇잖아, 이십만 원을 쓴 거지 번 게 아니잖아.”
“그, 그렇지만 오십만 원짜리를 이십만 원에 샀으니 삼십만 원 번거지.”
“......”
이 이야기는 결국 주문 취소로 끝이 났다.
‘내가 쓸 걸 사는 것도 아니고, 자기도 사자고 동의해 놓고, 아니 대체 뭐라는 거여?’
라고 생각하다가
‘그래 하긴, 좁은 집에 둘 곳도 마땅치 않고 그리고 이제 여행 얼마나 가겠어. 잘한거지 뭐.’
라며 이번에는 K2에게 다른 캐리어를 빌려서 여행을 했다.
며칠 전, 역시나 아침 식탁에서
“이건 하나마나한 소린데.”
라며 내가 말을 꺼냈다.
사위가 K2에게 헤어스타일러를 사줄 때 같이 갔었는데 그게 거의 육십만원이더라.
그래봐야 드라이어일텐데 뭐 그리 비싸냐했는데 요즘 신제품 광고를 보니 좋아보이더라.
머리가 막 저절로 예쁘게 정리되고 컬도 마음대로 넣을 수 있고 막 막 그렇다더라.
그런데 그게 어느 경로로 검색해도 가격이 한결같이 육십사 만원인데
어젯밤 최애 사이트에서 방송판매 할인이 적용돼서 오십이 만원에 살 수 있더라.
“......”
이 여자 또 시작이네 싶어, K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하는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 근데 안 샀어. 잘 참았지? 아유~ 잘했다 내 자신.”
“해, 해, 내가 사줄게.”
이건 또 뭔소리고 싶었다. 할인은 어젯밤에 끝났고 오늘은 어디에도 그런가격이 없는걸 확인한 참이었다.
‘그걸 알고 저러나?’
“아유 됐어. 버는 게 아니고 쓰는 거라며.”
한 번 사양했어도 두 번정도는 권할만도 한데 사주겠다는 말을 다시 하지 않는대신 K의 이야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그게 바로 요즘 자주 들리는 호텔경제학이라는 건데 말야...!@#$%^&”
아이구, 예예~ 제가 에어랩은요 무슨...드라이기면 충분합죠 녜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