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여행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검색도 하고 지인들에게서 팁도 수집했던 주주가
“시드니 물가가 엄청 비싸다네요. 그래도 마트에서 재료사서 해 먹으면 싸대요. 그 중 아보카도가 엄청 싸다며 실컷 먹고 오라던데요?”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참 이상하게도 외국여행을 할 때 추천하는 것 중 하나가 과일 채소 많이 먹고 오라는 얘기가 공통적으로 있었다.
유럽에 가면 납작복숭아를 보일 때마다 사 먹으라고 했고 동남아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망고며 리치 두리앙 등 열대과일을 질리도록 먹어도 얼마 안한다고 진지하게 말해준 이도 있었다.
K의 친구가 사는 밴쿠버에 갔을 때는, 한국에서는 비싸지 않냐며 매 끼니마다 연어스테이크를 해주었던 남편 친구 아내를 바로 언니라고 불렀 적도 있었다. 언니(?)는 아보카도도 한국보다 엄청 싸다며 왔을 때 많이 먹으라고 했었다.
남프랑스에 갔을 때는 차를 타고 지날 때 양 옆으로 지나가는 것이 온통 올리브나무 였듯 가는 식당마다 올리브도 흔하고 쌉싸레한 올리브 오일에 빵을 흠씬 적셔 먹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들은 조언과 실제 상황이 달랐던 적도 있었다.
여행동호회사람들과 처음 유럽에 갔을 때 조장이 사서 한 개씩 나눠주어 처음 맛봤던 납작 복숭아의 맛에 감동했지만 이후로 유럽에 가서 그 것을 먹어본 적은 아마도 없지 싶다.
언제 가도 흔하게 있을 거라던 말과는 달리 내가 그 곳에 갔을 때는 철이 지났거나 아직 이르다며 풍성하게 쌓여있는 과일더미 안에서 납작복숭아는 볼 수 없었다.
호주에서 먹어봐야 할 음식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는데 그래도 아보카도를 가격 신경쓰지 않고 먹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시드니 도착 첫 날 주변 산책을 하고 마트에 갔다.
물도 사고 아침으로 먹을 샐러드와 치즈 등을 카트에 넣고 추천받았던 아보카도를 쓸어담을 작정으로 채소 매대로 갔다.
그런데, 어랏?
두 눈을 의심하며 가격표 한 번 보고 주주와 멀뚱히 마주 봤다.
“이거 왜이래? 두 개 4달러면 한국이나 비슷하잖아!”
주주는 당장이라도 지인에게 따질것처럼 부르르했다.
결국 아보카도는 사지 않았다.
몇 주 전, 식재료 구입을 하던 사이트에서 10주년 세일 품목이 소개됐는데 그 중에 아보카도가 있었다.
여섯 개입 한 팩이 만 원쯤이었던가?
시드니에서의 아쉬움도 달랠 겸 과감하게 장바구니에 넣었다.
샐러드에도 넣고 아보카도 명란비빔밥도 만들어 먹을 생각이었다.
배송이 된 그 것은 전혀 숙성이 안 된 것인지 겉면은 선명한 초록이고 육질은 매우 단단해서 돌덩이 같았다.
삼 일 쯤 지났을 때 한 개를 까보기로 했다.
씨를 빼기위해 칼을 꽂으려고 하는데 칼날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그냥 좀 더 뒀어야 했는데 기어이 우격다짐으로 칼을 돌려 자르고 껍질을 벗겼다.
과육의 밀도가 촘촘해 다른 무엇과 비교할만한 대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포크도 들어가지 않고 이가 들어가지 않으니 더구나 먹을 수는 없었다.
못 먹고 버렸다.
K2가 집에 왔을 때 그랬다고 했더니 좀 더 숙성해야 할 거라고 했다.
숙성이 되면 겉면이 까매진다고 했다.
일주일쯤 지났다. 분주하게 보내느라 아보카도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
숙성시키려다 오히려 썩었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비닐 뚜껑을 열었다.
네 개는 여전히 싱싱한(?)빛 그대로였고 한 개가 짙은 고동색을 띠고 있었다.
칼도 잘 들어갔고 껍질도 부드럽게 벗겨졌다.
조금 오버돼서인지 양쪽 끝으로는 살짝 거뭇하게 변해있었지만 샐러드로 먹기는 괜찮았다.
다음 날 한 개를 까려고 하는데 어쩐지 칼이 들어가는 느낌이 어제와 다르다.
억지로 껍질을 벗겨 써는데 무를 써는 것보다도 단단했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늘 먹을 것에 관대하던 K마저 이건 못먹겠다며 샐러드에서 아보카도만 옆으로 골라 놓는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우리 그냥, 아보카도는 식당에서 사 먹자.”
일본어 수업에 가서,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짝꿍에게 물었다.
“아보카도는 어떻게 숙성해야 돼?”
“에이, 그거 잘 안 된다~ 내도 몇 번 사다 숙성시킨다고 놔 뒀는데 곰팡이 피고 썩어서 그냥 베리 삤다.”
“아아, 그치? 나만 그런거 아니지?”
남은 두 개는 짝꿍네 그 것처럼 아마도 베리삐게(?) 될 것 같다.
결국 한 개 만 원 짜리 아보카도를 먹은 셈이다.
값만 비싸고 먹을 것도 없다는 빕스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올리브와 연어, 아보카도와 망고 리치 등 사실상 요리가 아닌 그 것들을 눈치보지 않고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그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