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물어본 적 없고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내가 두 달만에 다시 이른 아침, 제주의 한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이유에 대해 굳이 얘기하려고 한다.
내게는 눈에 넣으면 아플(?) 것 같은 남동생이 있다.
그와의 첫 기억은 어느 햇살 좋은 여름날 동생이 예쁘다며 마루 아래 입 헤벌이고 바라보며 앉아있는 누나에게 오줌세례를 주었던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라는 동안 잘생긴 남자의 대명사 알랭드롱을 닮았다는 ‘잘생김’, 군대갈 때 엄마가 데려다 줘야한다던 ‘겁쟁이’, 상냥하기가 딸보다 낫다고 해서 ‘싹싹함’까지 겸비한 엄친아였다.
그래서인지 누나는 꿈도 꾸지 못했던 무려 학교우유급식을 돈을 내고 먹은 적이 있는가하면
개인과외를 거의 할 뻔(!) 했던적이 있던 것을 최근애 알고서는 질투심에 잠시 마음이 끓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귀엽던 아이는 자라서 어찌된 일인지 삼남매중 세월의 폭격을 가장 많이 받은 모양으로
날마다 날아가는 머리숱을 걱정하고 알랭들롱을 닮았던 크고 짙은 눈은 쳐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우리 집 막내이고 내게는 둘 도 없는 동생이다.
그 동생이 환갑, 아니 예순 살, 아니 아니 육십 세 아 그 말도 어울리지 않지만 아무튼 그 생일이 다가 오고 있다. 해서 여행을 하자고 했고 그 자리에서 날짜를 잡았다.
퇴직이 두 달 남았지만 아직은 직장인이니 멀리가기는 어렵고해서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항공권은 각자 끊기로 하고 숙소는 내가 예약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제주는 내가 좀 익숙하고 그 중에도 최근 자주 갔던 애월이면 모두 좋아할 것 같았다.
어째 너무 순조로운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간의 길고 짧은 몇 번의 여행등을 통해 가장 잘 맞는 여행메이트와의 시간들이 기대됐다.
마음에 걸리던 순조로움이 현실이 되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동생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이 번 여행은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반려동물 입실이 가능한 숙소였으니 이왕 예약한 김에 단추 데리고 우리끼리 가자고 했다.
단추를 데리고 갔던 두 번의 제주 여행이 K에게는 무척 부담이었던 모양인지 그가 싫다고 했다. 그리고는 둘이 가는 거니까 전에 갔던 숙소로 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예약 변경을 했다. 별 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K가 지원했던 단기 알바에 선정이 돼서 못가겠다며 K2와 가라고 했다.
어떤 이유로든 어렵다고 할 줄 알았는데 어째 순순이 가겠다며 항공권 예약까지 했다.
딸과 단둘이 여행이라니, 예상치 못햇던 전개에 기대감이 최고치가 됐다. K2가 운전을 하니 렌트를 할까 필요할 때만 셰어링을 할까를 고민하는 것도 즐거웠다. 엄마가 혼자 제주에 오면 이렇게 지낸다는 공간과 자주 걷던 경로를 얘기해주고 이 다음에 내가 세상에 없을 때 제주에 왔다가 한 번쯤 기억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기대감이 커질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혹시 모를 불안감이 덩달아 자라고 있었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를 않나.
K2가 조정할 수 없는 병원 예약이 여행출발 다음 날에 잡혔다고 했다. 진료 후에는 무조건적인 안정을 취해야함으로 이후에도 비행기를 타기는 어렵다고 했다.
결국 제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K가 일을 그만두었다.
항공권을 다시 예약했다.
물어보지도 않고 단추는 K1이 맡아 주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기간 중 하루는 밤 늦게 귀가할 예정이고 주말에는 2박 3일 집을 비울 예정이라고 했다.
아들에게도 다 계획이 있었다.
왜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냐고 했지만 물어봤어도 별 수는 없을 터였다.
두 번째 K의 항공권 예약 취소를 했다.
이쯤 되면 내 항공권과 숙소 모두 취소를 하는 것이 순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제주에 왔고 벌써 사흘 째 애월바다길을 쏘다니고 있다.
어제는 베트남식당에 가서 인생 반미를 먹었고 천주교 첫 표착지였던 성지 옥상에서 차귀도를 바라보기도 했다. 바람이 센 날에는 문을 열어주지 않지만 나는 제주에 갈 때마다 그 곳에 가기를 좋아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주며 햇살조차 투명한 완벽한 날씨였다. 그 빛을 받아 한껏 푸른 바다는 눈물이 나올 것처럼 아름다웠다.
시작은 동생의 환갑이었다.
동생가족과 왔어도 좋을 뻔했고 K와 둘이 와도 기분 좋았을 것 같다.
딸하고 같이 왔다면 어쩌면 완벽한 인생여행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도 좋다.
버스를 놓쳐 사십 분동안 정류장에 혼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좋았다.
이후로도 무슨 핑계로든 제주에 올 기회를 사양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꼬이고 비틀리고 엉키게 되면?
혼자 오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