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엄마는 딸 둘과 여행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 급기야 울었다고 했다.
촘촘하게 세워놓은 딸의 여행계획표가 예순이 넘은 엄마에게는 너무 버거웠다고 했다.
여행 사흘 째 되는 날, 저녁을 먹기위해 맛집을 찾아간다며 무려 한 시간을 걷고나서
먹을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그리 대단한 걸 먹는다고 이 난리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했다.
다음 날, 힘들긴 하지만 언제 또 오겠냐며 신발끈을 단디 묶으라는 딸들의 말에
이 년들아 난 못 간다며 그냥 주저 앉아 울었다고 했다.
그 여행의 끝이 어떻게 됐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 후 큰 딸은 유학차 떠났던 독일에서 결혼까지 해서 자리를 잡았고 작은 딸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너무 바빠 얼굴도 보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쯤 엄마는 힘들었던 그 여행조차 매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딸이 둘 있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듣다가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떤 딸은 엄마가 너무 의견이 없어 힘들다고 했다. 엄마 스스로 검색도 할 줄 알고 구글지도도 볼 줄 아는데 딸에게만 맡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체구가 아담한 딸은 마음이 착해 엄마의 짐까지 나눠지느라 여행 중 병까지 났다.
나이든 엄마는 멀쩡한데 딸의 무릎통증으로 계획했던 여행지에 갈 수 없게 되자 딸은 다음에 꼭 같이 오자고 여러번 말했다.
그 엄마는 그 때 갔던 다른 도시들보다 딸의 무릎이 아파 몇 번씩 같은 도시 안의 골목골목을 천천히 걸었던 시간이 가장 좋았었다고 기억한다. 심지어 하루는 비까지 촉촉하게 내렸었다.
딸은 신혼여행도 그 나라로 다녀왔지만 엄마와 다시 그 곳에 여행을 가게 되는 일은 아마도 없지 싶다.
그럴거라 생각하면서도 가끔 한 번씩 엄마는 만약에 딸하고 다시 그 곳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미리 맛집도 찾아보고 가보고 싶은 곳을 말할 거라 소심하게 마음을 먹어본다.
제주도 여행을 결정하고나서 K2에게 같이 가자고 할까를 돌아오기 사흘 전까지 고민만 했다.
잠깐 직장을 쉬고 있는 상황이라 그랬다.
말을 했더라면 뭐라고 했을까.
올 수 있거나 올 수 없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올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될까봐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K가 헐헐 하며 어이없어했다.
오면 좋은 거고 못오면 마는 거지 뭘 혼자 고민하냐고 했지만
오면 좋은 건 맞지만 못온다고 하면 말을 안 하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고 했다.
일본어교실에서 앞자리에 앉은 A가 십일 월에 남편과 일본으로 여행을 한다고 했다.
일본 지리도 모르면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지역이름을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고 아무튼 후쿠오카의 시골 마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하고 갈 때는 온천이 있는 시골로 간다고, 왜냐하면 돌아다니는거 싫어하는 남편은 온천에 두고 혼자 다니기 편해서라고 했다. 친구들과 갈 때는 도쿄 등 도시로 간다고 하며 깔깔 웃었다.
딸하고도 가끔 다니는데 딸은 엄마의 일본어 실력을 놀리며, 엄마! 일본어 공부를 그렇게 오래 하고도 그 정도면 그냥 때려쳐! 라고 한단다. 그 말을 하는 엄마의 표정에서 서운함이나 원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쇼핑도 다니고 예쁜 카페도 찾아다니느라 딸하고 여행을 할 때가 그 중 제일 좋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문득, 다시 딸하고 단둘이 여행하는 일이 내게도 있을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졌다.
제주도에 같이 가자고 말이라도 해볼 걸 그랬나?
여행을 다시 하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여행했던 그 순간의 기억은 아직 그 시간 속에 남아있다.
엄마의 울음으로 막을 내린 어떤 엄마의 여행도
해외여행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겁나고 서툴던 엄마와 딸의 여행도
어쩌면 지금쯤 실제보다 더 아련하고 애틋해서 더 아름답게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괜찮다.
딸하고 단둘이 여행하는 일이 없더라도
지금은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