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일상은 아침 산책으로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예쁘다, 아름답다 느껴지는 그 길은 ‘제주환상자전거길’이라는 이름도 있다.
매번 비슷한 시간에 나가다보니 몇 번인가는 같은 사람을 마주치기도 했다.
영어시간에 웃옷을 벗고 뛰는 근육질의 남성을 볼 때 어떠냐는 질문을, 러닝을 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멋지게 보였냐는 말로 듣고는, 심플한 의상에 가볍게 뛰는 젊은 여성이 멋져보였다고 말했다.
그 길에서 그런 러너를 만났었다. 언덕을 올라가는동안 앞쪽에서 떠오르는 햇살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아!’하는 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얼마간 걷다가 그녀의 모습이 까맣게 멀어졌을 때 나도 한 번 뛰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헉헉거리는 뜀이 아닌 사뿐사뿐 공기를 가르듯 뛰는 그녀처럼 나도 뛰어보았다.
어? 그게 된다.
물론 헐렁한 티셔츠와 조거팬츠 차림인 내가 그녀와 같은 모습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뛰려고 움직이는 순간 무릎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거나 발목이 삐끗하거나 혹은 숨이 가빠질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뿐사뿐 움직여지니 걸을 때보다 바람도 더 산뜻해지는 기분이다.
나중에 올지도 모를 후유증(?)을 생각해서 한 백미터쯤에서 그만두었다.
‘러닝,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해보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만 하면서 실행하지 못하는 일이 러닝 뿐은 아니다.
그림 그리기, 사진기 들고 서울 구석구석 돌아다니기, 거절당할 때 당하더라도 출판사에 원고보내기, 카페에서 일해보기, 마당있는 집에서 살아보기
생각에도 방향이 있다. 언제라도 그냥 하면 되는 일이 있고, 해도 안 될 일, 현실과 맞지 않아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일 등.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생각만 한다.
제주에서 돌아온 후 어제까지 앓았다.
감기기운도 있는 것 같고 근육통에 두통까지 있었다.
그게 꼭 백미터 러닝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역시나 안하던 짓을 하니 병이 난 모양이다.
“집에 오니 좋다.”
아침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아니 왜애?”
고소함인지 걱정인지, ‘거봐, 나 없으니 그런 거지.’ 하는 묘한표정으로 과장되게 K가 물었다.
“뭐 그냥, 내 침대에서 자고 아침 챙겨주는 사람도 있으니 좋네.”
그러면서 나는 또 아고다를 뒤적거린다.
‘미국에 혼자 가볼까? 유럽은 너무 멀지? 캐나다 동부는 안 가봤는데. 대만에 가서 밀크티를 원없이 마셔볼까?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해 보면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멈추고 오늘은 일단 불꽃쇼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