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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 내생각인데

by 이연숙


아침 운동이 먼저인지 김밥을 사는게 먼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곳에 묵을 때마다 매일 아침 산책을 나간다.

이 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김밥을 사러 가느라 약 일 킬로미터를 더 걸었다.

작년 여행 후 무려 이 만원이나 하는 김밥을 본 후 김밥의 적정 가격에 대해 생각하게했던 그 집이었다.


제주시와는 가깝지만 서귀포시 만큼 편의시설이 구비되지 않은 이 지역은 그렇다고 완전 시골은 또 아니다. 물가는 고르게 비싸지만 막상 혼자서 한 끼먹을 식당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양이 크지도 않은 내게 적당한 메뉴가 바로 김밥이었다.

그 때 묵은 숙소 주변으로는 세 곳 정도 김밥집이 있었다.

그게 그냥 김밥이 아닌 각각 특별한 재료를 이용한 김밥이라서인지 가격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의 기본 김밥 가격이 사천원으로 가장 저렴했고 숙소 기준 우측으로 일 킬로미터쯤 언덕으로 올라가면 있는 집은 상호가 장군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좌측으로 큰 언덕 하나를 넘어가서 있었는데 전복을 넣은 김밥으로 나름 핫플레이스라고 했다.

지난 구월에 왔을 때는 전복김밥집 근처에 숙소를 정했는데 정작 김밥집은 없어졌고 예전 숙소에서 가깝던 김밥은 간이 너무 세졌다. 장군김밥집은 별다른 고지없이 며칠 째 휴무였다.

먹거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음에도 엉뚱하게 먹을거리 때문에 고민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다행히 중심가에서 새로생긴 김밥집을 발견했다. 취나물김밥이 시그니처인데 맛도 괜찮았고 이제 가격이 오 천원인 것은 평범하다고 느껴질 정도가 됐다.


숙소에 돌아와서 보니 거리는 약 4.7킬로미터, 시간은 한 시간 십 분정도 걸렸다.

기본 김밥 두 줄을 점심과 저녁으로 먹으려고 사다놓고 종일 책을 보다, 글을 쓰다,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연출을 해보려다 추워서 방으로 들어왔다. 미뤄두었던 넷플릭스 시리즈물을 두 편이나 끝내고 그야말로 방구석귀신처럼 하루를 보냈다.

전날에는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다가 그 김밥 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접시에 담는 대신 자그마한 바구니에 포장된 김밥과 열무김치를 놓아 준 것을 바다가 보이는 이 층 바에 앉아서 먹었다. 가격이 비싸기도 하지만 비싼 메뉴 중 딱히 끌리는 재료가 없어서 기본으로 주문했는데 그 맛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향긋한 미나리향이 진했고 유부일지 햄일지 모르는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이 기분좋았다. 여느 김밥집의 가늘고 소심한 모양의 기본 김밥이 아니었다.

20251116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jpg


여전히 이만 원짜리 김밥이 궁금하지는 않다.

TV에서 김밥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고기를 잡으러 가는 어부들이 김에 싼 밥과 반찬을 싸가지고 가는데서 시작했다고 하듯

김밥은 부유한 사람들이 먹는 고급 음식이 아닌 서민이 영양이 골고루 들어간 밥을 간편하게 그리고 부담없이 먹는 음식이다. 방송에서는 김밥을 연구하는 조리사들이 갖가지 창의적인 김밥들을 선보인다. 어느 호텔 조리사가 만들었다는 고급 재료를 넣은 김밥을 보면서는 ‘저거 참 맛있겠다.’는 생각보다는 ‘저렇게 만들어서 얼마를 받을까?’ 가 먼저 떠올랐다.

김밥을 고급화해서 가격을 비싸게 받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김밥은 수수한 맛에 착한 가격이 매력이라는 생각이다.

장군이름의 기본 김밥 가격은 육천원이다.

여전히 기본김밥치고는 비싸고 갈비탕 육개장 설렁탕 등 한끼 식사비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집 근처에 그런 김밥이 있다면 아마도 나는 갈비탕대신 김밥을 먹을 것 같다.


식당에 갔을 때 직원이나 주인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어디선가 용기가 솟았나보다.


“그런데, 상호를 장군님이름으로 한 것은 이유가 있나요?”

“아~ 그거요 많이들 물어보시는데요, 그냥 고향이 여수라서요. 별 이유 없어요. 호호”


어제도 밝게 인사해주던 주인은 귀찮을 수 있는 질문에도 활짝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렇군요. 김밥집 이름치고 좀 의외라서요. 고맙습니다.”

“좀 그렇긴 하죠? 맛있게 드세요~ 또 오세요~.”


문이 닫히는 등 뒤로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한참을 따라왔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김밥은 일단 맛있어야 할 것 같다.

맛있으면서 가격도 저렴하면 좋겠지만

김밥을 먹으며, 맛있고 질 좋은 김밥을 만들기위해 들인 정성이 느껴진다면

김밥값을 가지고 투정을 부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만원은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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