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수업 중에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의 대답은 한사코
‘나는 스포츠를 싫어한다.’ 이다.
할 줄 알거나 좋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TV로 중계방송을 보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도 오랜시간 배웠고 즐긴 종목이 딱 하나 수영이라고 말하면 스포츠 주제에 대한 대화는 그 쯤에서 끝이 나고는 한다.
자발적 의지와 상관없이 올림픽 경기가 있는 계절이 오면 집안에는 온종일 중계방송을 하는 TV소리로 가득하다
그거까지야 어쩌겠나 싶었다.
그런데 올해 동계올림픽은 한 방송사에서 독점을 했고 우리는 그 채널을 볼 수 없으니 K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정규방송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막식 다음 날 아침 식탁, 매일 식사를 할 때 ott를 틀어놓는 노트북에서 중계방송이 나온다.
그것도 스피커까지 연결해서 소란한 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퍼졌다.
이게 뭔일인가 싶어 눈으로 K에게 물으니
“으응, TV로는 못 보지만 네이버로 볼 수 있어서.”
라며 마치 승자의 쾌감을 떠올리게 하는 표정으로 뿌듯해했다.
“그럼, 이 주동안 강제시청 해야하나요?”
K는 키득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라고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게 아니다.
오히려 그 응원이 지나쳐 매 순간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사 년동안 이 날만을 위해 노력했는데 성적이 안 나와 실망할까, 실수할까, 혹여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이 앞서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쯤 되면 공감능력과잉이라고 해야할 판이다.
쇼트트랙경기를 보고 있으면 내 몸도 따라 맷돌처럼 트랙을 돌고 피겨선수가 얼음판에 넘어지면 내가 넘어진 것처럼 엉덩이도 아프고 마음도 쩌릿하다.
그런 증상은 어떻게 된 것이 나이가 들면서 의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해지는 것 같다.
어제는 저녁 산책을 일곱 시 십 분까지 하고 돌아올 거라고 하고 나갔다.
나는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는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뉴스도 안 보고 방 안에서 꼼짝을 안 한다.
한참 후에 나와서는
“쇼트트랙 오백미터는 떨어졌어. 아 왜 우리 선수들은 자꾸 뒤에서 시작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 있다 다시 나와
“여자 천오백미터는 올라갔어.”
하고는 다시 휑하니 방으로 사라졌다.
아니 이게 무슨... 어리둥절 하는 사이 K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중계하는 거야. 재미있지? ”
재미없어도 재미있어줘야 할 것처럼 그의 얼굴은 생기가 돌았다.
이제 절반 온 것 같으니 아직 절반 남았겠다.
내가 지루해도 괜찮으니 우리 선수들 선전해서 K가 중계할 상황이 더 많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