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라는 게 말입니다

by 이연숙



입사초년생일 때 어느 날 담당 부서장이 물었다.


“이양이 몇 년생이지?”

“육십삼 년 생인데요.”

“에게게... 그 때도 사람이 태어났어?”


사람이 맞긴 합니다만... 이라고 소리내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 때도 지금도 그 부장님의 나이가 몇 살인지는 모른다.

내게는 까마득한 으르신(?)처럼만 느껴질 때였으니 그 분도 언젠가 태어났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겨를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한 때 내 나이가 누군가에게는 터무니없이 어리게 느껴졌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요즘 유일한 사회생활인 일본어 반에서 나이이슈가 있었다.

지금은 다른 수업에서 만나는, 나보다 아홉 살 아래인 A와 세 살 아래인 B 그리고 그리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A와 B가 없는 지금 수업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년 멤버 C와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이었다.

우리 딸 결혼 할 때, 라고 얘기하는데 갑자기 C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에엥? 결혼한 딸이 있었어?”


내가 웃자 옆에 있던 B가 아들도 작년에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예 자세를 고쳐 뒤로 돌아 앉더니


“아니 그럼 대체 몇 살인 거야?”

“육삼년 생인데요.”

“어...아, 예에..”


하며 말끝을 흐리며 옆에 있는 B를 향해


“그럼 자기는?”

“난 말띠요. 변상은요?”

“나? 나...는 육팔.”


그들은 별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데 나이만 먹은 나를 보며 놀라고

나는 어쩐지 처음부터 큰 형님같은 포스가 뿜뿜 풍기는 C가 무려 다섯 살이나 어리다는 사실에 놀랐다.

덜 친해서이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그에게는 깍듯하게 경어를 썼었다.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닌데 저절로 그렇게 말이 나왔다.)

신기한 건 이후에도 나는 자주 그런 투로 말이 나왔고 그의 위엄있고 도도한 태도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게 작년 말, 학기가 바뀌기 전 일이었고 어제는 A, B와 함께하는 스터디가 있는 날이었다.

치료차 얼마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A, 육남매의 외며느리인 B 모두 설 명절 준비얘기가 한창이다.

영어시간에도 일본어 시간에도 설날에 뭐할 거냐고 묻는 질문에 사람들은 시댁에 가고, 친지를 방문하고 차례를 준비하며 가족들이 모일 거라 음식 장만을 해야한다는 등의 대답을 했다.

나는? 그냥 집에 머물거라고 했다.

물론 나도 결혼 후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명절행사도 치러봤고 명정 증후군도 톡톡히 앓았던 적이 있었다.

차례를 지낼 일도 없으니 굳이 교통체증에 갇힐 필요 없이 연휴가 끝나고 한갓지게 부모님 댁에는 다녀올 것이고 아이들은 또 그들 편한 시간에 두 집 시간 맞춰 집에 오면 모두 좋아하는 메뉴 한 가지 정해서 한 끼 먹으면 되니 간단하다.

삼 년 전에는 추석 연휴에 무려 캠핑을 한 적도 있으니 살림 많이 편해진 셈이긴 하다.

B가 불쑥 나보고 부럽다고 했다.

나도 다 겪어본 일이다, 라고 말하려다 꼰대 같아서 그만두었다.


“자기들이 나보다 어른 같네. 지난 번, 나이를 트고도 언니랬다 이름으로 부르다 자기라고 했다 음청 어색해 했잖아. 내가 나잇값을 못하나?”

“아 그거야 자기가 나이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거지. 말투나 사고방식도 그렇고 편한 옷만 입고 다니는 모양이 육십 넘은 사람으로는 안 보인다는 말이지.”

“그, 나이라는 게 말이야. 결국 자기 보고싶은대로 보이는 건가보더라고.”


20260213그, 나이라는 게 말입니다.jpg


단추를 들어올리다 옆구리가 삐긋했다. 괜찮아지려니 했는데 통증이 심해져 결국 정형외과에 갔다.

오십 중반 쯤이나 됐을까 싶은 의사는 환자의 말을 길게 듣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모양으로 경위를 다 듣기도 전에 사진 찍고, 이상 없어보이니 초음파까지 하자고 하고는 끝.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는 사진에서 멀쩡해보이던 갈비뼈에 미세하게 금이 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정상인 뼈는 이런 모양이예요. 여긴 좀 다르죠? 젊은 사람 같으면 그냥 낫기도 하는데 연세가 있으시니...!@#$%&”


결론은 진통소염제 먹으면서 주 2회 정도 물리치료를 받으라는 얘기였다.

3회차까지, 갈 때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고 묻는 말에만 예 아니오로 대답했다.

그래서인지 세 번 째에는 다소 말투가 누그러진 느낌이다.


“이제 보호대를 집에서는 안하셔도 되겠어요. 그래도 외출할 때는 꼭 하시고요. 길이 미끄럽잖아요. 넘어지실 수도 있고...”

“......”


팔십 쯤 먹은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골프연습을 하다 그런 것도 아니고 고작 4.3킬로그램 강아지를 들어올리다 뼈가 부러졌으니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아무래도 지금이 바로

떨어지는 낙옆도 조심해야할, 바로 그 나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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