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들이 모여있는 외곽으로 나갔다.
전에 두 번 쯤 갔던, 메인 메뉴를 주문하면 채소가 무한리필 되는 식당이었다.
서빙로봇이 끊임없이 딩동거리는 가운데 우리 테이블에는 직원이 상차림을 해 주었다.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가운데 자리는 비워놓고 반찬을 가장자리에 놓더니 집게와 가위, 거기에 미역국 이 인분을 한 번에 담은 뚝배기에 앞접시까지 모두 내 앞으로 몰아놓는다.
제육과 꼬막무침을 주문했는데 자를 게 있나? 하며 갸우뚱 하는 동안 뭔가 언짢은 느낌에 좋았던 기분이 쎄해지는 것 같았다.
뭐지? 하면서도 마음 안에서는 그게 뭔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듯 메인 메뉴를 가져온 직원을 향한 눈빛이 새치름해졌다.
“뭐여, 이걸로 뭘 자르라는겨.”
굳이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가위의 용도에 대해 말하는데 K가 어느새 가위와 집게를 들고 김치를 자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주위 다른 테이블을 기웃거렸다.
오른 쪽, 젊은 연인이거나 신혼부부인듯 보이는 사람들 테이블에는 남성 쪽에 도구가 놓여있다.
왼 쪽, 중년쯤 된 여성이 어머니와 딸을 데리고 식사를 마치고 막 일어서는 참이었다.
그 쪽은 여성이 앉았던 자리에 가위와 집게가 놓여있었다.
내친김에 건너편 테이블을 목을 쭉 빼고 봤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이가 든 부부처럼 보였는데 아내가 고기도 자르고 생선도 바르느라 밥숟가락은 여전히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상태였다.
“아니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말야. 식당에까지 와서 여자가 수발을 드냐고. 직원 교육이 잘 안 돼있네.”
“......”
계란찜을 주는 식당이 제일 좋은 식당이라는 기준에다 조리도구를 남성앞에 놓아주는 센스있는 직원이 있는 곳이 멋진 식당이라는 또하나의 편견이 생겨버리고야 말았다.
아이들과 모여서 식사를 할 때 자주 민망할 때가 있다.
굽는 요리든 끓이는 요리든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세 남자가 각자 앞접시에 음식을 담는 건 똑같은데 젊은 두 남자는 각각 자기 와이프 앞에 놓아주는데 내 옆에 앉은 남자는 자기 앞에 놓고 허겁지겁 먹기 바쁘다.
뒤늦게 알아차린 사위가 다시 떠서 내게 내밀 때는 받기도 거절하기도 몹시 애매한 상황이 되고는 한다.
“아니야, 내가 떠서 먹을게.”
라고 말할 때 나보다 더 어색해하는 아이들 표정을 보고는 티는 못 내고 마음속으로 ‘집에가서 보자.’ 라며 부르르 약오르는 마음을 감추기 급급했다.
그렇다고 K가 둘이 술한잔 하러 갔을 때조차 마냥 손을 놓고 있는 사람은 또 아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뒤집을 시점을 기가막히게 알고 곱창도 부위별로 굽기 정도를 다르게 해서 앞접시에 놓아주는데 그 익힘 정도가 요즘 말로 참 이븐해서 감탄을 하기도 한다.
이게 또 약간의 부작용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친구들끼리 고기를 굽는 집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어찌어찌 그런 상황이 됐을 때
불판위에 올라간 고기는 익어가는데 누구하나 뒤집는 사람이 없다.
“어머어머, 난 고기를 구워본 적이 없어서...”
“아유~ 나도 고깃집 가면 남편이 굽지 내가 집게를 들어본 적이 없네?”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래,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
라며 나도 고기 구워본 적은 무척 오래됐지만 마지못해 집게를 들어올린 적도 있었다.
식당에 갔을 때 남자가 고기를 굽거나 찌개가 끓고 있는 가스렌지 불조절을 하는 모습은 다정해보이지만
여자가 그러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짠해보인다.
이 것 또한 편견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래서
채소를 무한정 먹어도 되는 그 집에 다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뭐 어떤가.
어디에 놓아주든 K는 자기가 가져가서 고기도 굽고 감자탕 불조절도 할텐데.
아직 아이들 앞에서 아내 그릇에 먼저 음식을 덜어줄 줄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집 K선생은 아직 진화중이니 차츰 나아지려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