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삼간 다 태울뻔 했지 뭐야

by 이연숙



셋쩨 고모집과 작은 외삼촌 집은 작은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 아래에 있었다.

예닐곱 살무렵 나는 외가에 맡겨졌었다.

고모와 외삼촌이 이웃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고모네 맡긴건지 삼촌네 맡긴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건, 잠은 삼촌에서 잤는데 낮에는 고모네 셋째 J언니랑 놀았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J언니는 고모네 세 언니 중 가장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큰 언니는 이미 출가를 했고 둘 째언니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던가? 아무튼 그 집 딸 중 막내였던(막내지만 나하고는 무려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언니는 온종일 나를 데리고 다녔다.

사실, 언니가 나를 데리고 다닌 건지 내가 언니 뒤를 쫄쫄 따라다닌 건지는 언니 말을 들어봐야 알 것 같다.

산에 가면, 내 보기엔 그냥 풀숲 같은 데서 언니는 내게 까마중도 따주고 산딸기도 따주었다.

밭을 매러 갔을 때는 밭두렁에 앉아있게 하고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언덕 위에 있는 고모집 사랑방 툇마루에 앉으면 멀리 동구밖이 보인다.

언니가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그 마루에 앉아서 목을 빼고 동구밖을 바라봤다.

그 곳은 기차역에 내려 고모네 집에 올 때 버스에서 내리는 곳이었다.

멀리 까마득하게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나는 엄만가 해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 무렵 시골집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도 하고 난방도 했었다.

언니가 저녁밥을 지을 때 언니는 나를 부뚜막에 앉혀놓고 마른짚을 넣어 불을 땠다.

부엌 한 쪽에 천정까지 쌓아놓은 볏단을 끌어다 부지깽이로 아궁이에 밀어 넣으면 불이 활활 타는 것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부뚜막에서 내려와 언니가 두고 간 부지깽이를 잡고 언니가 하던 것처럼 마른 짚을 아궁이 속으로 넣었다. 불이 더 커졌다. 재미있었다. 볏짚을 조금 더 끌어와 이번에는 한 뭉텅이를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잘 마른 볏짚에 붙은 불이 커지더니 볏짚을 타고 아궁이 밖까지 달려나온다.

내가 부지깽이를 집어 던지고 울음을 터뜨림과 동시에 언니가 수퍼맨처럼 날아와 불을 밟아 끈 상황이 거의 동시에 이어졌다.

넋이 나간 나를 토닥거려 다시 부뚜막에 앉히던 언니가 갑자기 깔깔 웃었다.

눈물에 콧물에 아마도 재를 뒤집어 썼을 몰골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아이고, 여우야 너 머리카락 탔어!”


라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또 까르르 웃었다.

언니는 나를 여우라고 불렀다. 내가 토라져서 여우 아니라고 하면 ‘하하하 여우 아니래!’라며 고모까지 합세해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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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설에 김장조끼 세 개를 사서 주주와 K2에게 하나씩 줬었다.

김장을 하러 오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귀여워서 샀다고 했더니 조니가 이거 입고 촌캉스 가면 되겠다고 했다.

이러저러하는 동안 겨울이 다 갔고 하여 촌캉스도 물건너 갔다고 생각했었다.

지난 달, 떡수업이 끝나고 K2가 단추 데리고 영월로 촌캉스를 가자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월요일 일본어 수업 하루 빠지고 2박3일 일정을 잡았다.

단추는 사료만 있음 되는데 여자 둘이 먹을 준비물은 소형차처럼 보이는 소형차 아닌 차 뒷좌석을 꽉꽉 채웠다.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방도 있지만 우리는 굳이 불을 때는 방을 선택했다.

불은 매일 오후 다섯시에 땐다고 했다.

오후 네 시쯤 도착했으니 방은 냉골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방바닥에 길게 탄 자국이 있는 방은 온기가 있었다.

매뉴얼대로 다섯시가 되자 주인이 장작을 가지고 올라와 아궁이에 불을 붙여놓고 내려갔다.

구들장이 데워지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불을 땐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방바닥이 따끈해지는 것 같다. 연일 영하 십 도를 오르내리는 상황이었으니 다행이다 생각했다.

비닐을 쳐 놓은 마루에 앉아 주인이 아궁이에서 꺼내준 숯불로 화로에서 조개를 구워먹었다

다음 날 아침 K2가 뜨거워서 구워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어제 봤던 길게 탄 자국이 있는 쪽에 K2가 잤다.

오늘은 이부자리를 돌려 탄 자국이 있는 쪽에 발을 두고 자기로 했다.

좀 이상하기는 했다. 어렸을 때 삼촌집에서는 새벽녘이면 조금 추워지는 느낌에 뒤척거리다보면 삼촌이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 동안 솥에서는 쇠죽이 끓는 냄새가 났었다.

새벽잠을 설치는 이유가 쇠죽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에 군불을 때지 않으면 아마도 방은 냉장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하루 한 번으로 온종일 난방이 가능하다니 방바닥에 뭔가 비밀이 숨어있을지 모른다고 속삭이며 K2와 키득거렸다.


그 날 저녁불은 네 시에 때 줬다. 아궁이 위헤 놓인 작은 가마솥에 백숙을 올렸다.

K2와 담요를 둘러쓰고 아궁이 앞에 앉았다.

타닥타닥!

장작타는 소리가 경쾌하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다가 오래전 짚을 타고 타오르던 불꽃이 떠올랐다.

불꽃과 함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J언니, 여우였던 나, 웃음소리가 걸걸하던 세상 무해한 셋째 고모기억이 줄줄이 고구마넝쿨처럼 따라 올라온다.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괜히 집게로 방금 뒤집은 고구마를 뒤적거렸다.


“하마터면 초가삼간 다 태울뻔 했지 뭐야.”


불 때문인지 얼굴이 발그레해진 K2가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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