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면 좋겠다고 했다.
K2 신혼에는 아파트 세블록 거리에 살았었다.
얼마 후 사위 직장 발령으로 대전에 살다 서울로 왔지만 대전만큼은 아니더라도 휭하니 오가기는 멀다고 했다.
그걸 누가 모르냐, 요즘 서울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이 집 팔아서 서울을 갈 수 있겠냐
그렇다고 너희가 여기로 올 수 있겠냐며 시큰둥하니
"혹시 아기라도 생기면 엄마가 오가면서 도와줘야할텐데 어째?"
라며 비겁하게도 가장 약한 데를 치고 나온다.
하여 그나마 지금 사는 집값에 가까운 지역을 찾아 버스를 갈아타고 가서 내리니 그 곳이 성북구였다.
그 곳은 내가 결혼 전까지 살았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다니던 초 중 고등학교가 반경 이 킬로미터 내외에 위치하고 있었다.
위치는 분명 그런데 내가 알던 그 동네가 아니었다.
즉, 인걸도 간 데 없고 산천도 의구하지 않았다.
오래 전, 종로에 갔을 때 달라진 모습에 당황했던 것처럼
그로부터 거의 이십 년이 되어가는 서울은 내가 알던, 안다고 생각하던 그 곳이 아니었다.
한강을 중심으로 남쪽은 강남
북쪽을 강북이라고 부른다.
강북에는 광화문이 있고 인사동이 있고 종로도 있다.
나고 자란 곳이 줄곧 강북이었으니
강북 지리는 눈감고도 환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마땅하다고 하는 말 속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가 있음을 모를리 없겠고
입던 옷, 친한 사람, 늘 먹던 음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길이라고 늘 다니던 길 아닌 곳을 잘 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다.
기억력이 남다르면서도 유독 열일곱 기억에 있어서 아득한 나를 보고
한 친구가 진단하기를
열일곱 시점에 몹시 열병을 앓았던 모양이라고
대상은 알 수 없지만 심인성 그시절 기피성 아니겠냐고...
물론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열일곱에 열병을 앓았던 것 같은 막연한 기억이 어슴프레하게나마 떠오르는것 같을 뿐..
나이가 동갑이라는 건 일정부분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효과가 있음은 분명한것 같다.
어렵고 불편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던 동호회 지인이 동갑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고등학교 어디서 다녔냐고 묻는다.
그냥 말해버렸으면 오히려 편안했을것을
갑자기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신비주의냐, 검정고시 출신이냐, 지방에서 학교 다녔냐 등등 수습안될 억측만 쏟아졌다.
스물 여섯, 결혼을 할 때까지
내 활동 반경은 강북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주 가끔 직원 집들이나 회식 후 2차를 강남쪽으로 간 적이 몇차례 있을 뿐이다.
부산에서 다시 올라 왔을 무렵
얼굴도 모르는 동창 모임을 종각에서 한다고 했을 때 나랑은 무관한 일이라고 외면했었다.
친구가 모임겸 보자는 연락을 따로 하기 전까지는..
열시가 되기 무섭게 차 끊길새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지하도가 울리도록 뛰어 내려가 지하철을 탔었다.
그런데 왜 굳이 용산역엘 갔으며
거기서 마음을 졸이며 차를 기다리다 열두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가 되었다.
서울역에서 갈아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바로 종각인데...
사진강좌때문에
글선생님 작업실 가느라
영화보러 가느라
인사동 가느라
근래들어 종로를 빈번하게 드나들었다.
어떤 날엔 한 주에 사흘이나 간 적도 있다.
이제는 눈을 감고는 몰라도 눈 뜨고는 두리번거리지 않고 똑부러지게 찾아갈 수 있다.
쉬운길을 참 어렵게도 돌아왔다.
힘들고 어렵고 불편했던 일들이 차츰 익숙해지고 편해지는데에는
시간이 한몫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 안의 것들을 내어 놓는 속도와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쉽게 내어 놓으면 쉽게 찾아 질 수 있는 것들을
마음속 셈으로 굳이 돌아돌아 가는 것이 차츰 힘이든다.
종로가 참 많이 변했다.
극장이 밀집해있는 3가도 여전한데
예전 단성사 서울극장 피카디리는
시너스등 멀티플랙스 영화관으로 재빠르게 옮겨가고 있었고
큰길 중심으로 북쪽 뒷 골목에는
아직도 3천원짜리 백반집이 즐비하고
점심시간쯤이면 생선굽는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하기도 한다.
곧있으면 그나마 남아있던 허름한 종로 뒷모습도 사라진다고 하던데
이제 쉽게 갈 수 있는 종로
일없이 카메라 메고 어슬렁 돌아다녀봐도 좋겠다.
2008. 12. 13.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