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이 차가워서

by 이연숙



칠 주간 매주 월요일마다 지하철 일호선을 타고 영등포에 갔었다.

K2가 떡 패키지 과정을 같이 듣자고 해서였다.

장담할 수 있는 앞날이란 게 없다는 걸 알지만 창업할 일도, 더구나 취업이 가능할리 없는데 그건 해서 뭐하냐 싶은 마음은 잠깐, 십여 년전 미국에서 제빵교실에 딸과 함께 다녔던 기억이 좋아서 무작정 그러자고 한 터였다.


여섯 살 어느 여름, 갑자기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되었을 때 언뜻언뜻 어른들이 하는 말을 주워들은 얘기 중에서 ‘영등포’라는 말이 깊게 박혔었나보다.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옮겨 놓은 곳이 영등포 시립병원이라고 했다.

응급실로 가는 줄 알았는데 영안실로 데리고 가더라는 엄마의 말, 그리고 차가운 얼음 위에 누운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라고 했다. 아버지가 신었던 작업화 한 짝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아버지의 가슴 한 가운데에 붉다못해 새까맣게 눌린 자국이 있었더라고 아마도 그건 기어핸들자국이었을 거라고 엄마는 어느덧 덤덤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 응급실, 영안실이 영등포에 있었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머물다 떠난 곳이라서인가 어쩐지 영등포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스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때 영등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깨끗하고 화려한 곳이었다.

누구에겐가 영등포 시립병원 이름이 바뀌었다는 말을 전해들었을 뿐 그 곳이 어디에 있는지는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걸어서 가는데 이십 분이 넘게 걸려서 그렇지 지금 사는 곳은 일호선과 사호선 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무려 더블역세권(?)이라며 K와 나는 스스로 뿌듯해하고는 한다.

주로 사호선 이용하기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K의 경로는 한사코 일호선 역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또 우리가 참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일호선을 타고는 앉아서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수업이 두세 번 남았을 무렵부터는 승객 밀도도 높지 않고 가끔은 두세 정거장 만에 자리가 날 때도 있다.

그 날은 두 정거장만에 자리가 생겨서 앉았다.

옆자리에는 다섯 살이나 됐을까 싶은 남자 아이가 앉았고 그 앞에 엄마가 서 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엄마가 앉으려고 하는 걸 가방먼저 던져 새치기하고 그랬던 거 절대 아니다. )

그렇다고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아이의 엄마는 세상 달달한 표정으로 아이를 내려다보며 아이가 하는 말에 일일이 다정하게 답을 해주었다.

모자가 나누는 얘기가 듣고있다보니 어느덧 불편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어디서 내려요?”

“신이문역에 내리면 돼.”

“몇 번 가면 돼요?”
“으응, 보여줄까? 아직 한참 남았어.”


아이엄마가 열차 노선표를 보여주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는데 아이가 두 손으로 엄마 손을 꼭 감싸 안는다. 작은 손이 엄마 손을 모두 감싸지 못하니까 아이는 살며시 쓰다듬는다. 아미 손을 엄마가 다시 다정하게 잡아준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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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이 차가워서 따뜻하게 해주는 거니?”


아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하 십이 도까지 내려갔던 마지막 수업날에 지하철역에서 교실까지 가는동안 마음이 간질거려서 추운줄도 몰랐다.


마지막 수업이 끝났는데 쫑파티를 해야하지 않겠냐며 둘이 조금 놀다 들어가겠다고 K에게 문자를 했다. 공덕에 예전에 가보고 싶었던 두부집이 있다며 거기 가자고 했다.

두부집도 좋았고 딸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좋았다.

우리 딸 어디가 좋았냐고 물었을 때 사위가, 조니는 맛있는 거 먹을 때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고 했던 말이 새삼 공감이 됐다.

두부 정식에 나온 조림이 맛있다며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소심하고 자신감없는 나와는 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심이지만 활짝 웃는 모습이 나를 닮았다고 느껴질 때는 또 묘하게 기분이 좋다.

나는 딸이 있어서 행복한데 우리엄마는 내가 있어서 행복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 손은 늘 따뜻해서 내가 엄마 손을 녹여줄 일이 없었다.

엄마의 마음은 늘 저 멀리 가 있어서 나는 늘 닿지 못하고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 손이 차가웠으면 어땠을까.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나는 지금 무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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