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쿄토
재작년 겨울이었나? 매일 생활한복 타령을 하는 K에게 큰맘 먹고 광장시장에 가서 개량한복을 사 주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K것을 사면서 내 것도 한 벌 샀다.
그 때 마음은 설에 아이들과 만나면 약식으로나마 한복을 입고 세배를 나눌 생각이었다.
그 말을 들은 주주가 자기 입던 한복이 많다며 집에 올 때 한 짐을 가져와서 펼쳐놓았다.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얼핏 보면 일상복처럼도 보이는데 공통적으로 여밈 장치는 옷고름으로 되어있는 것이
원피스형태도 있었고 투피스 모양은 더욱 화려했다.
하나씩 입어보라며 입는 법도 알려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사이즈가 찰떡같이 맞았다.
이런 옷이 있었네, 하며 신기함과 만족의 미소를 감추지 못하다가 문득
“그런데 이 걸 입고 어디를 가지?”
라고 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K가
“일본어 배우러 갈 때도 입고 친구 만나러 갈 때도 입으면 되겠구만.”
한다.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차곡차곡 옷장에 걸어두기는 했는데 여전히 그걸 언제 입을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통한복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평상복이라기에는 나름의 기교가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 원피스나 스커트를 즐겨입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내 옷차림의 대부분은 청바지에 티셔츠, 가끔 면바지에 니트 정도였으니 내가 생각해도 생활한복을 입고 교실에 나타난 내 모습이 영 어색하고 거북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다른나라에 여행을 할 때 입으면 좋겠다, 였다.
작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갈 때 원피스한복을 한 벌 챙겨 넣었었다.
본다이 비치를 걸을 때 그 한복을 입고 갔었지만 사실상 사진으로는 그 것이 한복인지 원피스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한복에 맞춰 신으려고 메리제인 컴포트화를 샀지만 불편해서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벗어버렸었다.
이번에는 조금 과감해지기로 했다.
쿄토는 우리의 경주와 닮은 도시라고 하니 거기 가는 날 입으려고 마음 먹었다.
이왕이면 신발에 이어 옷에 어울리는 가방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모양의 미니백 종류를 검색하다가 문득 어릴 때 엄마의 지갑이 생각났다.
금속프레임 가운데에 구슬 두 개가 엇갈리면서 잠그게 돼있는데 그 시절에는 그런 모양이 유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왜 그랬는지 나는 그 지갑을 보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 지갑에서 나오는 지폐는 최소 네 번이상 접혀있었다.
엄마는 저녁 반찬거리를 사라고 꼬깃한 천원짜리를 꺼내준 적은 있었지만 준비물을 사야 할 때에는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딱!’하며 닫히는 지갑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기만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그 지갑이 생각난 걸까?
그런 잠금 방식의 가방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니 그런 걸 어디서 파는지 알 리가 없다.
엄마의 지갑보다 조금 큰 사이즈로 여권과 휴대폰만 들어가는 정도의 크로스백이 잘 어울릴 거라는 근거없는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어떻게 검색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참을 뒤지다가 어디선가 ‘똑딱이 가방’이라는 명칭이 보였고 그 키워드로 다시 찾아보니 잠김형식이 그렇게 생긴 가방이 나왔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사이즈와 모양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기를 며칠, 그게 뭐라고 나의 집념이 급기야 내가 찾던 그 모양, 그 사이즈의 가방을 찾았다.
매일 평균 이만 오천에서 삼만 걸음을 걷는 것은 쿄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어 선생님은, 오사카는 먹다 지치고 고베는 신발공장이 많아 신다 지치며 쿄토는 패션의 도시라서 입다 지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고 했다.
선생님 말처럼 시조도리 거리에는 옷가게도 많았고 가방, 액세서리 가게도 줄지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가방가게에 들어갔다.
세상에, 그 곳에 온갖 종류의 똑딱이 가방이 다 있었다.
내 가방하고 비슷하게 생긴 것을 보고 안쪽에 있는 라벨을 찾아봤더니 쿄토에서 제작된거라고 한다.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나?’
라는 별 의미없는 상상을 하며 지갑이며 가방 백팩으로까지 만들어진 똑딱이들을 돌아보다 또 엄마 생각이 났다. 그 곳에 있는 가방들은 예쁘고 화려했지만 나는 엄마의 낡고 촌스러웠던 그 지갑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빠께스 다마내기 변또 난닝구 등 일본말을 생활언어에 섞어 쓰던 시절이라 지갑이며 가방 옷 장신구들 역시 일본산인지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던 모양이다.
뜬금없이 엄마의 그 지갑이 떠올랐던 건 아직도 그 시간속에 남은 마음이 많아서인가보다.
엄마는 곁에 있었지만 어렸던 나는 늘 엄마가 그리웠고 나이들어가는 지금도 그렇다.
여행선물로 K가 지갑 하나를 사 줬다.
지갑을 열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