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를 산책시키는 줄 알았는데

단추는 지금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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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는 아침식사를 마치면 바로 나가다가

날이 추워지면서부터는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간다.

혹여 외출할 일이 있을 때는 돌아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단추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따금 배변판에 볼 일을 보기는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거의 일정한 시간에 무조건 집을 나섰다.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지만

요즘은 집 안에서 적어도 똥은 누지 않는다.

모쪼록 실외 배변하는 개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사심이 커져

피곤해도 꾀가 나도 개 산책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매일 산책을 시키기도 어렵지만

정작 산책을 나가려고 할 때면 흥분해서 투정이 많아져

산책 한 번 나가는 절차가 꽤나 복잡하다는 조니는 단추에게 종종


“이렇게 행복한 개가 어딨어, 매일 산책도 나가고.”


라고 말한다.

어쩐지 좋은 주인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


산책을 나가는 천변에는 보행전용 다리가 있는데

집에서 제일 가까운 다리가 남쪽으로는 가장 끝이었다.

내 편의로 그 것을 1번교 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1번교를 건너 걷다가 2번교로 건너와서 집으로 왔다.

얼마 지나서는 3번으로 건너서 왔다.

그렇게 와서 단지 내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집에 오면 약 오천 걸음이 된다.

하루 운동량으로 적당하다 싶어 내심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단추는 그걸로 부족했는지

어느 날엔가 부터 3번교 앞에만 오면 있는 힘을 다해 직진을 하려고 줄을 당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 그 다음 다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몰라

혹여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따라 갔다.

첫 날은 무척 길게 느껴졌다.

어쩐지 다른 도시까지 다녀온 기분으로 운동어플을 확인하니

전보다 약 이천 걸음이 증가했을 뿐이었다.

단지 내 산책로를 도는 대신 거기까지 갔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얼마 전 부터는 4번교로 돌아 시작점 경사로까지 왔을 때

단추가 우유수레를 끄는 파트라슈라도 된 것처럼

죽자고 있는 힘을 다해 직진 방향으로 줄을 당겼다.

개가 가자는 대로 끌려 다니면 안 된다는 규칙쯤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최근 마무리 되어가는 큰 건물 공사 중 천변로도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못이기는 척 길을 따라 갔다.

역시나 새로 다듬은 길은 단정했으며

봄이 되면 꽃을 심을 것처럼

화단도 넓게 정비가 되어있었다.

도로로 올라오는 경사로도 새 길이라 깨끗했다.

일부러 차도를 미리 건너 새로 조성될 건물 앞 작은 공원 구경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9천 걸음을 걸었다.

집 안에서 오락가락하는 걸음수와 합치니 만 걸음이 쉽게 넘었다.

그 날, 밤에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수면을 했다.

단추도 죽은 것처럼 잤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개를 산책시키는 줄 알았는데

개가 나를 운동시키고 있었나 보다.


“아줌마! 오천걸음이 뭡니까? 운동했다고 하려면 적어도 만 걸음을 걸어야지 말야.”


2021년의 마지막 날을 대전에서 조니와 함께 보냈다.

작년 까지는 와인을 마시며 해가 바뀌는 것을 같이 봤는데

올해는 멀리 있으니 각자 보내게 되리라 생각했었다.

성탄절에 왔다 가면서 그냥 인사로 하는 말인 줄 알았던

우리 집에 오라던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듯

언제 올 거냐고 재촉을 했다.

아무 계획 없다가 부랴부랴 대전으로 내려갔다.

제야의 종소리도 없었고 TV가 없으니 연말 프로그램을 볼 수도 없었지만

그보다 저녁 아홉시 취침이 습관이 된 새나라의 어르신(?)들 때문에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아침에, 준비했던 떡만둣국을 끓여주어 같이 먹었다.

자칫 외로운 뻔 했던 60살을

가족과 오붓하게 따뜻한 떡국을 먹으면서 맞았다.

조니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다.


엄마가 아이를 챙기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다.

새 해의 시작이 좋았으니

중간도 끝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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