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목욕탕에 가 본적이 있나요?

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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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씻으러 우리 집에 오셨다는 말에

동생이 말했다.


“써니(올케)는 엄마랑 목욕 자주 했는데 형수는 안 하나보지?”


아, 진짜? 시어머니랑? 목욕을?

라고 생각하다보니 나도 신혼 때 두어 번 시어머니와 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목욕을 좋아하셨다.

동네 목욕탕은 단골이었고

인근에 새로 생긴 불가마에도 자주 가셨다.

내가 임신 중 감기에 걸렸을 때에는

기침에 좋다며 불가마에 갈 때마다

배 속을 파내고 꿀과 생강을 넣어 중탕인지 구운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걸 해다 주셨다.

반면 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혹시 가더라도 사우나실에 들어가서는 3분을 참지 못했고

지금까지 찜질방에 간 횟수도 손에 꼽을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목욕탕에, 그것도 시어머니와 (둘만 간 건 아니고 시누이와 셋이었다.)

갔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시어머니와 목욕탕에 가 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누군가는 그게 뭐 별 일인가요? 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 왜 도대체 뭣 땜에 그런 어색하고 민망한 일을?

이라고 되 물을 지도 모른다.

사실상 친정엄마와 목욕탕에 가 본 것도 까마득하다.

한 쪽 팔에 깁스를 한 엄마는

깁스한 손을 비닐로 감싸고 샤워를 시켜 달라고 했다.

하라는 대로 비닐로 감싸 종이테이프로 붙이고

급하게 구입한 목욕 의자에 앉은 엄마에게 샤워기로 따뜻한 물을 뿌렸다.

샴푸를 하고 몸에 비누칠을 하고 물을 뿌려 헹궈내는 동안

엄마는


“아우, 개운하다.”


소리를 백 번 쯤 한 것 같다.

아이 셋을 품었었을 뱃가죽은 늘어졌고

가슴도 탄력을 잃은 지 오래지만

80대 치고 엄마의 피부는 생각보다 탄력이 있었다.

그리 살가운 모녀사이는 아니라서인지

엄마는 딸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이 어색해서

자꾸 같은 소리를 되풀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며느리보다는 딸에게 민망한 게 낫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정엄마는 사흘을 묵고 집으로 가고

다음 날에는 시어머니가 집에 오셨다.

이태리 타올로 며느리 등을 벅벅 밀던 그 어머니의 모습은 없다.

눈물이 찔끔 나올 것처럼 아팠다.

그것이 며느리가 미워서 였는지 정말 때가 많이 나와서 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목욕을 다녀온 며칠 후 피부에 자잘한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며칠 후 다가 올 생신을 빌미로 집에서 밥을 한 끼 대접하려고 오시게 했다.

집에서 식사를 준비해 손님을 치른 지가 하도 오래돼서

뭐부터 먼저해야할지 몰라 며칠 전부터 생각나는 대로 장을 봤었다.

잘 모를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안전할 것 같아

일의 순서를 적어놓고 차근차근 준비하다보니 점심 때가 되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가지 탕수 응용버전은

의도를 한참 벗어나 산으로 갔다.

아침부터 바쁘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라

시누이가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순례를 하느라 두 시나 돼서 도착했다.

늦은 점심이라서인지

음식이 입에 맞아서인지

차려 놓은 음식을 대부분 잘 드셨다.

솜씨도 없는데 멀리 오시느라 고생만 하셨네요 라고 했더니


“잘 했는데 뭘.”


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칭찬에 인색하시다.

칭찬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와 제대로 눈을 마주친 기억도 별로 없다.

생각해보니

그런 어머니와 목욕탕에 갔었다는 것은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프게 등을 밀어주신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예뻐서 였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불현 듯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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