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가 아니라 당구래

엄마 이야기

by 이연숙
20220208장구가 아니라 당구래.jpg




이사 전에 다니던 노인정에는 매일 출근하듯 가서

고스톱을 치다가 점심을 먹고 저녁때가 되면 퇴근하듯 집에 왔다.

금요일에는 외식을 하거나 특식이 나올 때도 있다고 했다.

수요일에는 노래 선생님이 오고

일주일에 두 번인가는 요가 선생님이 오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의 얘기다.

코로나 상황이 되기 전 겨울에 엄마는 고관절을 다쳐 입원과 수술, 요양 재활치료를 했다.

조심조심 걸어서 동네 산책정도 하게 되었을 무렵에는

코로나 때문에 노인정이 문을 닫았다.

엄마는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검사를 해 본적은 없지만 엄마의 MBTI 성향은 E일 것이 분명하다.

가무에 관심은 많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나에 비해

엄마는 ‘무’는 몰라도 ‘가’에서만큼은 탁월한 재능이 있다.

스물한 살에 윗집 누나 집에 놀러오던 훤칠한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미자의 뒤를 잇는 명가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니까.

내가 차멀미가 심해 차 타기를 힘들어하는 것과 반대로

엄마는 차를 타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고 멀리 훨훨 다니는게 좋다고 했다.


개울 하나 건너 옆 단지로 이사를 한 후

굳게 닫힌 상태라 이름 등록조차 하지 못한 새 노인정보다

예전 동네 친구들과 가끔 연락을 한다고 했다.

거기까지 였다.

엄마는 혼자 공원을 산책하거나

새로 지은 도청앞 공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거나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의원에 운동 삼아 혼자 다녀오는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그렇게 꼬박 일 년 반을 보내고 작년 가을

약을 타러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노인복지관에 들렀다.

모집하는 강좌가 있는지 물었더니

아직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강좌는

세 가지 정도 밖에 없다고 하더란다.

탁구와 장구 그리고 다른 것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장구를 신청해볼까 한다고 했다.

안내데스크에서 문의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노인 두 세 명이 모여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다소 노여워하는 것 같았다고.

가까이 가서 들으니


“노인네라 못할 거라잖아.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거여 뭐여.”

“못 할 건 또 뭐여. 하면 하는 거지.”


노인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은 장구강좌얘기였다.




지난 연초에 집에 온 엄마의 깁스에 낙서를 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참! 장구는 어떻게 됐어? 손 다쳐서 또 못했겠네?”


그러고 보니 바로 다음날 등록 하러 갈 거라고 했는데

이후로는 통화를 하는 중에도 장구에 대한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눈은 TV화면을 향한 채 엄마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말했다.


“으응 그거, 장구가 아니고 당구래.”

“....???!!”


엄마의 말을 알아듣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당...구라고?”

“그래서 그 할매한테 그랬나봐. 늙은이들은 못할 거라고.

에이 모 사실 할 게 없으니 그거라도 할까 그랬던 거지, 뭐 꼭 할 마음도 없었어.”

“노인복지관에 노인이 못하는 강좌가 있으면 어쩐대? 그럼 탁구를 하지 그랬어.”

“그건 같이 할 사람이 있어야지. 전에 다니던 데서는 공을 넘겨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지.”


결국 엄마는 방구석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가만 생각하다보니 그게 또 그렇다.

노인이라도 당구 하지 말란 법 있나?

장구가 없으면 당구 하면 되지.

어차피 배우는 건데 선생님이 차근차근 잘 가르치면 되지.


아닌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어머니와 목욕탕에 가 본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