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연초에 전해진 조카의 암 진단 소식에
세상이 잠시 멈춘 느낌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고 3월에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사촌 막내 동생의 소식을 전했더니
충격이 크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삼촌에게 전화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비교적 융통성도 있고 분위기를 잘 맞출 줄 아는 큰아이도
사촌 동생의 일에는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기에 마음이 많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러게, 힘이 들어 죽을 것 같은데 힘내라고 할 수도 없고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기에는 내 일이 아니라 쉽게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고.
겪는 사람이 제일 힘들긴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지켜만 봐야하는 부모는 또 얼마나 무섭고 무기력하겠어.“
“그렇죠.”
“나도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힘이 되지 않더라도
같이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만 전해도 낫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거 같고.“
아이가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두 번 째 검사 결과가 나왔던 날
궁금하고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차마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K가 자기 전화로 통화를 했다.
세 번 째 결과가 나왔을 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그냥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어떤 위로는 오히려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섣부른 걱정은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 수도 있다.
때로는 그냥 기다려 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서는 곁을 지켜 주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할 때도 있다.
드라마에서 장례식 장면이 있었다.
사람들이 각각 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오는 중
상주의 한 친구는 수프를 가져왔다고 했다.
수프를 가져오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 것 밖에 없어 수프를 가져왔다고 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걸 할 수밖에 없다.
고모 마음이 애가 탄들 부모만큼이야 하겠으며
사촌 형제가 걱정이 된들 아픈 동생에 닿기야 하겠나마는
지금은 어설픈 위로의 말 대신 조용히 기도를 하는 편이 낫겠다.
긴 싸움에 미리 무너지지 말기를
혹여 무너졌더라도 곧 다시 일어서기를
부디,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말기를
자기 탓을 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