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단막극 큐레이션을 추천!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풋풋한 열망에서 피어난 푸르른 이야기들

by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더위가 한풀 꺾인 듯하다.

사실 기온만 보면 착각인 것 같기도 하다만, 분명 7월보다는 덜 덥지 않나 싶다.

뭐 그렇다고 실내활동 빈도가 줄진 않았다.

여전히 덥긴 하니까,, 근데 또 집에만 있는 건 몸이 근질거려 못하는 지라 무조건 밖에 나가야 한다.


이건 핑계 아니고 진심인데, 나에게 여러 작품을 보는 건 여가가 아니라 일종의 공부다.

나는 무언가 보는 게 확실히 창작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서

영상이든 글이든 하루에 한 번씩은 감상에 시간을 할애한다.


근데 요즘 들어 막 끌리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간 보지 않았던 것들을 좀 들여다 봤다.

그러다 발견한 게 티빙의 tvN 단막극 큐레이션 배너.

곧바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분량, 내용 모두 밖에서 보기 적합한 것 같아서였고,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로 시작해서 여러 작품을 며칠에 걸쳐 좀 봤는데


이거 꽤 괜찮다.


솔직히 아주 걸작이다!

이렇게 평하기엔 좀 부족하긴 하지만 톡톡 튀기도 하고 뻔한데 뻔하지 않은 시도들을 섞은 게 재밌다.

그래서 단막극의 재미를 다른 이들도 이번 기회에 느껴보면 좋겠다 싶어서,

그리고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꾸준히 진행됐으면 하는 마음에 몇 편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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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스틸.jpg


* 어설픈 어른들의 귀여운 성장담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

O'PENing 2023 | 연출 윤혜렴 | 극본 이충한 | 출연 고수, 아린

드라마 분석글을 쓰면서 '90%의 익숙함'과 '10%의 새로움'을 여러 번 언급했는데

이 작품도 이러한 비율을 충실히 따른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성장한다는 서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위로를 건넨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런 '무해한' 이야기는 역시 수요가 있다.


고시 실패 후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고수와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는 재수생 여름.

건물 옥상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공통된 결핍을 공유하며 경계심을 서서히 풀어간다.

후반부, 갑작스레 떠난 바다에서 "어른이란 뭘까, 성공이란 뭘까?"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며

'정해진 답은 없다'는 따뜻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까지, 이 모든 과정이 바로 90%의 익숙함이다.


썸머 바다.PNG 출처 : 티빙

그렇다면 10%의 새로움은 어디 있을까

본인은 이야기에 살짝 섞인 소재의 과감함과 배우의 의외성에서 찾았다.

굉장히 잘 생긴 배우 고수가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파는 물건이

하필 '성인용품'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호기심과 의외성에서 오는 재미를 준다.

특히나 중후반부 대인기피증 때문에 선글라스가 없으면 밖을 못 나가서

야밤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아린과 식당을 가는데, 그 와중에도 분위기가 레옹 마냥 다르다.


아린도 마찬가지.

순수한 얼굴의 아린이 내뱉는 찰진 욕설과 거침없는 행동 또한 짜릿한 쾌감을 준다.

또한, 나름대로 세상에 회의적인 모습 또한 청순한 외모와 엇갈려 묘한 어울림을 나타낸다.

두 사람이 '어울리는 것'을 벗어나 새로운 옷을 입고 소화해 낸 덕분에

이 뻔한 성장담이 지루하지 않고 재밌어진다.

무해한 맛에 과감한 매운맛을 살짝 섞어 요즘 시청자들의 입맛을 정확히 저격한,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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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틴물에 담긴 씁쓸한 자화상, <스톡 오브 하이스쿨>

드라마 스테이지 2021 | 연출 정다형 | 극본 박경화 | 출연 이유안, 이레, 김시은

솔직히 말해, <스톡 오브 하이스쿨>은 내 취향이 많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큐레이션에 포함되는 것엔 반대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취향 저격'일, 약간 자극적이고 시의성은 아주 높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흙수저' 여고생이 다소 빠듯한 집안에서 주식을 통해 자산을 갖추려는 이 하이틴물은

학생들마저 자산 불리기에 목맨 현시대를 날카롭게 관통한다.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하려는 주인공 안형인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다른 아이들과의

대비 역시 극명하게 드러나며 비판점 또한 명확한 작품이다.


스톡 스틸.PNG

이 작품에 깔린 설정과 메시지에서 주목할 점은 아이러니함.

계급을 오르는 사다리라 불리던 교육의 현장에서,

정작 주인공은 공부가 아닌 주식으로 계급 상승을 시도한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공부를 대충 하거나 수상 경력 등을 경시하는 건 아니다.

전부 열심히 하면서도 주식으로 자산을 불리려는 것이다.


입시 경쟁만으로는 모자라, 이제는 자산 축적까지 유행이 되는

10대들의 모습은 활기차 보이지만, 서글픈, 블랙코미디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보다 자신의 삶과 미래를 적극적으로 일궈 나가는 주인공의 분투는,

단순한 성공 신화가 아닌 씁쓸한 리얼리즘의 영역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암만 세상 밝게 영상이 진행돼도 이야기 속 본질에 담긴 쓰린 시대상은 감춰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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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간 포스터.jpg 출처 : 티빙

* 나는 나로서 쓸모 있는 인간인가? <대리 인간>

드라마 스테이지 2021 | 연출 김민경 | 극본 김수연 | 출연 공승연, 고보결, 유태오

만약 내 인생의 가장 껄끄러운 순간을 누군가 대신 살아준다면 어떨까, 역시 편하지 않으려나?

<대리 인간>은 이 흥미로운 상상력에서 출발한 SF 스릴러다.

타인의 감정을 대신하는 '대리 인간'이 된 한 여자가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하는 이야기.

특수 인식기를 통해 고객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한 '대리 인간'은 고객의 삶을 대신 살아주며

점차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삶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이 과감한 SF 설정은 곧 보편적인 메시지로 이어진다.

"쓸모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드라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쓸모'를 강요받는다.

타인과 세상에 밀려 낙오자가 된 사람들,

그들은 '나'로서는 쓸모없고, 타인의 삶을 대리할 때만 가치가 생기는 것인가.

상대평가가 기본값이 된 이 사회에서, 우리는 온전한 '나'로 바로 설 수 있는가.

작품은 정답을 주기보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리인간 스틸.PNG


사실 이런 설정이 드문 건 아니다.

현재의 기술로도 불가능한 것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아마 먼 미래가 배경인 세계관.

인간 존엄이 무시된 일들과 그런 집단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직접적인 대사로 강조하는 점이 좀 아쉽긴 하다.

아무래도 비윤리적인 인물의 전형으로 나오는 회사 측에서 이런 대사를 반복하니

메시지를 주입하는 경향도 조금 느껴졌다.


다만 이렇게 직접적이고 흔한 장르라고 느껴져도 어디서 시도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드라마라는 보수적인 장르에서 이러한 설정을 차용해

대중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것 자체는 분명 쉽지 않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TV드라마지만 단막극이기에 가능한, 그래서 다소 과감하고 신선한 이야기들이 모인

이 큐레이션에 <대리 인간>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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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마무리.jpg


* 단막극, 단편영화. 비대중적인 포맷에 대한 소망

효율과 가성비가 미덕인 시대에, 단막극과 단편영화는

시대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듯하면서도 철저히 비대중적인 포맷으로 인식된다.

숏폼, 미드폼 드라마가 등장하고 짧고 가벼운 것들에 대한 소비가 줄지 않고 있는 와중

왜 단편영화와 단막극은 미니시리즈나 장편영화에 비해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까


사실 이유가 별 건 아닐 것 같다.

창작자들의 태도와 의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트렌드가 변하고 장편영화와 미니시리즈가 채우지 못한 시장을

자극적이고 빠른 콘텐츠로 공략하는 게 숏폼, 미드폼 드라마라면

단편영화나 단막극은 시장을 공략하려 들지 않는다.


아마 그들은 장편을 만드는 마음과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고집스러운 건데, 그래서 더 빛나는 구석이 있다.


숫자의 비대함과 휘발되어 날아가는 이야기의 잔재들

찾기 힘든 창작자의 의도와 소비자의 탐구심


그들은 짧다는 이유로 이러한 것들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짧은 형식 안에는 긴 것과는 또 다른 과감한 시도와 새로운 가능성이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더 자유로운 성질도 있다.


이 비대중적인 포맷들이 단순히 신인들의 등용문이라는 명목으로만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존중받고

더 많은 창작자들이 상업적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중한 놀이터로 남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작은 관심과 클릭 한 번이, 또 다른 비범한 이야기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응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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