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은, 불완전하고도 고민스러운 청춘의 성장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영화 한 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최근 상업에 가까운 작품보단 독립영화를 더 즐겨봤는데
특히 두 작품이 인상 깊었다.
조희영 감독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
최근에 개봉한 두 영화는 시네필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이 이 영화들의 존재를 알았으면 해서 이 글을 적어보려 한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가 더 끌리는데
<3학년 2학기>가 더 보편적인 감정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본 작품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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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현실의 비극을 다루는 방식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어떤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여 함께 분노하고 눈물 흘리게 만들고,
또 어떤 영화는 한 걸음 떨어져 그저 덤덤하게 현실을 비춘다.
최근 관람한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였다.
그리고 그 건조함이 오히려 더 큰 파장을 남겼다.
직업계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주인공 ‘창우’는 현장실습에 나선다.
대학 입학과 병역특례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들어선 공장은,
열아홉 소년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현실의 축소판이다.
익숙지 않은 노동의 고됨보다 정신을 갉아먹는 위축감이 더 힘들고,
안전을 위해 구매를 요구하는 장비들은 여전히 구비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자연스레 영화 <다음 소희>가 떠오른다.
같은 소재를 다루지만, 두 영화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다음 소희>가 소희의 죽음과 그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의 울분을 통해 감정의 폭을 극대화했다면,
<3학년 2학기>는 불행을 전시하기보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아이들의 일상을 묵묵히 따라간다.
그리고 그 덤덤함과 담백함이 눈물 어린 호소보다 관객의 공감을 사는 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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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2학기>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코 이 ‘절제된 연출’에 있다.
창우의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고, 가혹한 노동 환경에 내몰리며,
가깝진 않지만 자신과 비슷한 신분의 형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얼마든지 감정적으로 관객에게 호소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신파를 경계한다.
오히려 건조하게 그들의 시간을 비출 때, 현실의 쓰라림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나 너무 슬퍼!’라고 외치는 대신, 덤덤한 눈빛과 이미지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가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창우의 불행에 섣불리 공감하기보다 그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집안 사정 때문에 ‘다니고 싶은’ 회사가 아니라 어쩌면 ‘다녀야만 하는’ 회사에서
묵묵히 지게차 면허증까지 따내는 그의 모습은, 처절한 생존기이자 우리 모두가 거쳐온,
혹은 거쳐가고 있는 성장의 한 페이지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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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치 신인 배우들로만 구성된 듯,
대사를 주고받는 리듬이나 톤이 때때로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감독이 이 어색한 공백과 호흡을 굳이 걷어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현실성을 극대화하는 탁월한 장치가 되었다.
주인공 창우를 비롯해 성민, 우재, 다혜까지
영화 속 인물들은 과장된 구석 하나 없이 우리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작위적인 캐릭터가 없는 시나리오에, 꾸밈없는 연기가 더해지니
영화 속 인물과 현실의 경계가 자연스레 허물어진다.
우리는 스크린 속 창우를 보며 가상의 인물이 아닌,
지금 어딘가에서 땀 흘리고 있을 청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영리함은 시나리오에서도 엿보인다. 창우를 힘들게 하는 건 특정 ‘악인’이 아니다.
물론 우재를 괴롭히던 송대리, 앞과 뒤가 다른 과장처럼 얄미운 인물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진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열악한 안전 환경, 낮은 임금, 제한된 기회, 부유하지 않은 가정과 같은 ‘상황’ 그 자체다.
감독은 개인의 악행을 부각하며 손쉬운 분노를 유발하는 대신,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하며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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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인물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섬세했지만, 그것을 암시하는 비유들은 너무나도 예상 가능했다.
변색된 사과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회장의 모습,
스위치를 꺼도 바로 멈추지 않아 위험성이 몇 번이나 강조되던 그라인더,
안전장치 하나 없는 2층의 위험한 공간까지
관객이 너무 쉽게 그 의도를 파악하고 다음 전개를 예측하게 만드는 장치들은 때론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서투른 연출이 언제나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인물과 서사가 다소 단조롭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창우의 선택과 성장을 담백하게 그려낸 것은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주체적인 고뇌나 의지가 뚜렷하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덕분에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서사적 성취나 시각적 충격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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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영화 배급사 대표에게 한국 독립영화의 전망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 영화제 실적이나 관객 수 모두 녹록지 않다는 현실적인 진단이었다.
하지만 조희영 감독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그리고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 같은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마냥 어둡게만 생각할 수는 없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3학년 2학기>, 이 담백하지만 묵직한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그래서 우리의 스크린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