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중 가히 최고라 할 만하다.(주관적)
오랜만에 글을 쓴다.
장편영화 일을 하다 보니 글은 고사하고 브런치를 킬 시간조차 없었다.
어느덧 마지막 글을 쓴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작가의 서랍 안에 제목만 넣어놨던 작품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뒤늦게 풀고자 한다.
어떤 드라마는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곱씹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은중과 상연>은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한 인물의 시점에서 섬세하게 직조된 관계의 연대기는
마치 최은영이나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읽는 듯한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토록 훌륭한 드라마였기에, 사소한 아쉬움들이 더욱 짙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빛났던 순간들부터 서서히 좀 써 내려가 보겠다.
1. 한 편의 소설처럼, 은중의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
<은중과 상연>의 가장 큰 미덕은 드라마 작가인 은중이
자신의 오랜 친구 상연과의 이야기를 각본으로 써 내려가는 액자식 구성에 있다.
이 ‘소설 같은’ 전개 방식은 15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이야기에 틈이 없다는 것은 자질구레한 사건을 욱여넣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인물들이 겪을 법한 사건들로 채워져,
그들의 감정선이 왜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지를 지독히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러한 밀도 높은 서사는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필력을 증명한 송혜진 작가의 필력 덕분에 가능했다.
송혜진 작가의 대사는 단순히 상황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과 말 사이의 침묵과 행간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캐릭터의 복잡한 심리를 드러낸다.
조영민 감독의 연출도 분명 좋았다. 인물의 미세한 떨림과 숨 막히는 침묵, 시선이 부딪히는 찰나의 공기까지 섬세하게 포착하는 연출로 영상에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리고 하나 첨언하자면,
이 각본에 상연과 그녀의 엄마 윤현숙의 관계 묘사의 부족함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가 철저히 ‘은중의 시선’에서 쓰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샬롯 웰스 감독의 영화 <애프터썬>처럼, 화자의 기억에 기반한 이야기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기에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상연의 모든 서사를 설명하려 했다면,
이 드라마가 가진 은중의 소설이라는 고유의 색은 아마 옅어졌을 것이다.
2. 우리는 상연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는 모든 시청자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나는 상연을 이해할 수 있을까?”
속된 말로 상연은 정말 ‘나쁜 년’이다.
그녀가 은중에게 저지른 악행은 용서와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작가는 상연에게 몰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를 남겨둔다.
입체적으로 그려진 인물 덕분에 우리는 은중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따라가면서도,
어느새 ‘어쩌면 내가 더 가까운 건 상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혹은, 내 안의 어떤 모습은 은중을, 또 다른 모습은 상연을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 세밀한 인물 묘사 덕분에 시청자는 두 사람의 감정선을 부지런히 오가며,
관계에 대한 다각적인 시선을, 드라마는 갖게 만든다.
3. 좋다는 말로도 부족한, 배우들의 열연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김고은 배우의 연기야 이미 수많은 작품으로 증명되었기에
‘역시는 역시’라는 감탄이 나왔다면, 정말로 놀라웠던 쪽은 박지현 배우였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각인시킨 존재감을 넘어,
<은중과 상연>에서 그녀는 정점을 찍었다.
친구를 사랑하지만 시기심에 그를 파괴해 버리는 마음,
이기적이고 위태로우면서도 한없는 열등감으로 가득 찬 상연의 처연한 모습을 완벽하게 자신에게 입혔다.
은중과 상연은 유년기부터 40대까지 상연의 죽음까지의 나이대의 모습을 골고루 보여준다.
20대 대학생부터 40대까지 달라지는 성향과 관계, 이것을 이질감 없이 보여주는 것을 넘어
대사 한 마디로도 시청자를 흡입시키는 경지에 올랐다고, 감히 써본다.
+ 김상학 역의 김건우, 윤현숙 역의 서정연 배우 역시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야 하는 어려운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극의 밀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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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섬세함 속, 군데군데 드러난 극적 허용
분명 밀도 높은 글이었지만,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든 극적 허용이 군데군데 보였다.
엄마가 위독한 상황에서 상연이 건 전화를 은중이 받지 못하자, 상연은 그대로 잠적해 버린다.
물론 절망적인 상황이었겠지만, 문자 한 통 남길 수도 있었을 텐데
그 길로 절교를 택하는 전개는 다소 지나치게 느껴졌다.
또한 상연과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상학의 관계를 알게 된 후에도,
은중이 너무나 멀쩡하게 상연을 대하는 모습은 의아했다.
아무리 상연을 빼고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 한들,
은중은 결코 바보 같은 인물이 아니다.
애초에 시청자는 은중의 바보 같은 면에 이입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은중이 그저 자존심 없고 숙이기만 하는 인물이었다면 애초에 사랑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후반부, 편지 한 장에 오랜 상처를 덮고 상연을 용서하는 과정 역시
누군가에게는 급진적인 전개로 느껴졌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앞서 말한 ‘시청자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답하는 사람들에게 은중의 선택은 끝내 이해하기 힘든 영역으로 남는다.
2. 조금은 아쉬운 편집 리듬과 연출
이러한 극적 허용은 후반부의 리듬을 삐걱거리게 만들었다.
13부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은중의 감정에 깊이 몰입했던 시청자들은
너무나 쉽게 상연에게 곁을 내어주는 은중의 모습이 어찌 보였을까.
각본의 약점을 편집으로라도 메울 순 없었나 생각한다.
용서의 과정에 무게를 좀 더 실었으면 어땠을까.
더불어 영상은 시나리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이토록 섬세한 감정선을 다루는 이야기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 관점에서 <은중과 상연>의 영상은 다소 평이했다.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연이 안락사를 향해 가는 과정이나
은중이 좌절하는 그토록 중요한 순간들마저도 연출은 다소 평이했다.
물론 좋았다, 다만 그 이상은 없었나. 배우의 존재감으로 꽉 찬 영상이 때론 연출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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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올해 넷플릭스 시리즈 중 가장 좋았다.
본인의 취향이 아주 반영된 소감인데, 나는 이러한 색깔의 시리즈들이 더욱 사랑받길 원한다.
은중과 상연은 충분히 대중적인 면이 있고, 재밌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묻히며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