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올해의 한국영화

더 추워지기 전에 이 영화가 널리 퍼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적시길

by 인절미사과

이번 글은 거진 두 달만에 쓰는 것 같다.

사실 이 글의 시작 자체는 한 달 전에 진즉이 시작했으나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느라 여력 없는 생활 때문에

브런치 뿐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글을 쓰는 것과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10만을 돌파한 이 영화를 쓰는 것이 뒷북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간단한 글로라도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를 글에 옮기지 못하나면

그 본래의 목적과 색깔을 유지하지 못할 것 아니겠는가.

--------------------------------------------------------------------------------------------------------------------------


*윤가은의 '거리 조절', 그 사려 깊은 시선에 대하여

나는 <세계의 주인>이, 그리고 윤가은 감독의 영화가

다른 청소년 영화들보다 더 깊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적당한 거리 조절'에 있다고 본다.

그는 <우리들>의 초등학생, <우리집>의 아이들, 그리고 이번 <세계의 주인>의 고등학생들까지,

상처와 결핍을 가진 아이들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세심하고 배려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의 손을 맞잡아 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코 그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들>을 떠올려 보자.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소외받는 아이의 감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지만,

자극적으로 전시하지 않는다. 굳이 아프게 헤집어 보여주지 않아도, 그 소외감이 얼마나 쓰라린지

관객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세계의 주인>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주인(서수빈 분)'은 친척,

그것도 믿었던 가족의 일원에게 성폭행을 당한 상처를 안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칫 치명적이고 파괴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윤가은 감독은 그 상처를 자극적인 비극으로 소비하는 대신,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비춘다.

이 사려 깊은 거리 두기 덕분에 우리는 아픔을 넘어 치유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

세계의 주인 사진2.jpeg


*관객의 편견을 보란 듯이 부숴버리는 '사랑'

영화의 오프닝은 꽤나 강렬하다.

주인이가 남자친구와 키스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꽤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너무 선정적인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후 주인이가 여러 남자친구를 짧게 만나왔다는 사실, 성폭행 피해자의 징후가 드러나면서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의 안경을 쓰게 된다.

인트로 장면 또한 그 안경이 비추는 풍경에 씌여 해석되었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무의식적으로 인과관계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얄팍한 편견을 우아하게 반박한다.

영화 초반, 장래 희망을 적어 내는 종이 앞에서 머뭇거리던 주인이.

사실 고등학생이 꿈을 정하지 못한 건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 평범한 망설임조차 '피해의 영향'으로 해석하려 든다.


윤가은 감독은 결말부에 이르러 이 해석을 완벽하게 뒤집는다.

일련의 갈등을 겪고, 자신의 세계를 다시 구축한 주인이가 마침내 장래 희망 란에 적어 낸 단어는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사랑하고 싶다."

세상에, 주인이는 그저 사랑이 좋은 아이였던 것이다. 상처 입은 피해자이기 이전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고유한 욕망을 가진 18살 소녀였던 셈이다.

우리는 왜 그 본질적인 끌림조차 색안경을 끼고 봤던 걸까.

윤가은 감독은 따뜻하지만, 참으로 똑똑하다.

관객의 편견을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깨뜨리는 이 화법이

그녀의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

세계의 주인 가족.jpg


*가족의 불완전성,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인 이유

주인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건 아버지의 동생, 즉 사촌이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혈육의 울타리가 무너진 것이다.

가해자는 뻔뻔하게도 구치소에서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내오고,

아빠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산속으로 도망치듯 회피해 버린다.

엄마(장혜진 분)는 딸의 고통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죄책감에 술에 의존하곤 한다.

이 가족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

몸은 가까이 있어도 마음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어쩌면 붕괴 직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주인이는 부모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그들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으로 도망친 아빠에게 먼저 연락을 건네는 건 다름 아닌 주인이다.

엄마는 비록 서툴고 유약할지언정,

딸과 함께 세차장의 거센 물소리 속에 갇혀 주인이의 울음을 들으며 곁을 지킨다.

동생은 구치소에서 온 편지를 누나 몰래 숨기며, "더 이상 편지하지 말라"고 편지를 쓰곤 한다.


각자 미숙하고 상처 투성이지만,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이 안간힘.

불완전한 울타리 안에서도 주인이가 다시 자신의 세계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삐거덕거리지만 따뜻한 '가족' 덕분이 아니었을까.

<세계의 주인>은 말한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 위에서 다시 사랑을 꿈꾸고 서로를 안아줄 수 있다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세계의 주인 사진1.jpg


주인이의 사진을 끝으로

이 영화가 더욱 더 조명을 받아 지금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마음에 녹아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