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마망>

슬픔이 머무는 숲에서 마주친 나의 작은 엄마

by 인절미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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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유약하고 눈부신 어린 시절을 끌어안다


우리는 때때로 부모가 태어날 때부터 단단한 어른이었을 것이라 착각하곤 한다.

대부분 우릴 지켜주고 보듬어 주니 이상한 착각은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 역시 한 명의 유약한 인간임을 깨닫는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 <쁘띠 마망>은 이 착각을 아주 다정하고 시적인 방식으로 부순다.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슬픔에 잠겨 훌쩍 떠나버린 엄마 마리옹,

그리고 홀로 숲에서 놀다 동갑내기 시절의 엄마를 마주하게 된 딸 넬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각별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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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위를 덮은 담백한 타임슬립


영화의 타임슬립은 흔한 SF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요란한 시각 효과나 거창한 인과율은 없다.

그저 넬리가 숲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어린 마리옹을 마주치는 식이다.


넬리는 어린 마리옹의 집에 초대받고,

방 안에 누워 있는 외할머니를 발견하며 단번에 그녀가 자신의 엄마임을 직감한다.

이 정적이고 담백한 설정 덕분에 관객은

'어떻게 시간 여행을 했는가'라는 장르적 쾌감이 아니라,

'이 시간 여행으로 넬리가 무엇과 연결되는가'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할머니를 잃은 넬리와 곧 집을 떠나 이사해야 하는 어린 마리옹은

상실과 슬픔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깊은 유대를 형성한다.


마법 같은 설정을 일상의 질감으로 녹여내는 셀린 시아마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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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한 어른과 단단한 아이, 기적 같은 위로


넬리는 아빠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성인 마리옹이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자신을 영영 떠나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재미있는 것은 넬리의 이 깊은 불안을 달래주는 이가 바로 여덟 살의 어린 마리옹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보통 어른은 무디고 강해야 하며, 아이를 위로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하지만 영화 속 어른 마리옹은 몹시 유약하며 부서질 듯 슬퍼한다.

오히려 어린 마리옹이 넬리에게 건넨, 너무나도 아름다운 말


"원해서 낳았대? 그랬을 거야, 내 마음속엔 이미 네가 있거든."


최고의 명대사다.


어른이라고 해서 늘 강할 수는 없다.

마리옹은 성인이든 여덟 살 아이든 그 자체로 위로받아야 할 존재였고, 넬리 역시 마찬가지다.

상처 입은 이들만이 존재하는 이 숲속에서, 핏줄로 이어진 두 소녀가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시간을 보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눈부신 치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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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공간이 빚어낸 꿈결 같은 현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초반부에 짧게 등장하는 병원을 제외하면, 오직 넬리와 마리옹의 집, 그리고 두 세계를 잇는 숲이 전부다.

인물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다양한 사건과 부딪히는 대신

오직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서로에게만 집중하게 만들면서,

영화는 마치 한 편의 조용한 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영화는 이것이 그저 휘발되는 꿈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연결과 회복을 통해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있음을 증명해 낸다.

마지막 장면, 넬리는 엄마를 향해 "엄마" 대신 본명인 "마리옹"을 부른다.

엄마 역시 딸을 향해 "넬리"라고 답하며 둘은 깊이 포옹한다.


안고 있는 사람은 분명 어른 마리옹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넬리를 부르는 목소리와 그 순간의 감정은 숲에서 함께 뛰놀던 어린 소녀의 것이다.

꿈같은 세계에서 나누었던 교감이 기어이 현실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서로를 구원한 것이다.

가짜가 아닌, 진실된 마법이 그들에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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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그것이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쁘띠 마망>은 부모 역시 나와 같은 작은 아이였음을,

그들에게도 감내하기 벅찬 슬픔이 존재함을 아주 사려 깊은 시선으로 일러준다.

상실의 숲을 빠져나올 때쯤, 우리는 내 곁의 유약한 어른들을

있는 그대로 껴안을 수 있는 아주 작지만 단단한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조금이지만 나도 이런 용기가 마음 속에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