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밸류>, 어땠지?

엎질러진 물을 두 손 모아 소중히 담는 것

by 인절미사과


타인의 고유한 슬픔을 이해한다는 것, 그 지난하고도 눈부신 사랑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를 보고 왔다.

가족 관계의 붕괴와 회복이라는 주제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무수히 다뤄진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 뻔한 토양은 창작자가 지닌 깊이와 섬세함에 따라 전혀 다른 질감의 열매를 맺곤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결의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요아킴 트리에가 이 상처받은 가족을 어떻게 보듬어내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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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생긴 뿌리 깊은 균열은 하루아침에 메워지지 않는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는 그 회복의 과정을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그려낸다.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두 딸 노라와 안나는 아버지와 적대감만 겨우 숨긴 채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가 큰딸 노라에게 자신의 영화 시나리오를 건네면서

멈춰 있던 이들의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한다.



*회복의 자연스러움: 쏟아진 물을 천천히 긁어모으듯


노라는 처음에 아버지의 시나리오를 거부한다.

그녀의 내면은 본인의 표현대로 '엉망'이다.

영화 초반, 연극 무대에 오르기 전 극도로 불안해하며

낯선 남자에게 키스해달라, 때려달라 요구하다 도망치는 그녀의 모습은

아직 직시하지 못한 상처가 얼마나 삶을 갉아먹고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화에 참여하게 되면서 노라는 자신이 엉망이 되었던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면했던 상처를 똑바로 마주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요아킴 트리에는 이 외적·내적 회복의 과정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 과정을 묘사하자면 마치 '땅에 쏟아진 물을 맨손으로 천천히 주워 담는 것' 같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윤슬처럼 반짝이는 물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몰아내 양동이에 다시 담는 행위.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주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이다.

회복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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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라는 가장 적극적인 용기, 그리고 남겨진 자의 몫


노라의 동생 안나는 언니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고 가정도 꾸렸다.

그 이유에 대해 안나는 담담히 말한다.

"나에겐 언니가 있었거든."

이 대사는 비단 안나의 속마음 뿐만 아니라 영화 내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노라는 과거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쓴 각본 속 여자 역시 자식이 있음에도 자살을 시도한다.

"어떻게 소중한 존재가 있는데 그럴 수 있을까?"

이것이 각본이 던지는 질문이라면, 노라의 삶은 그에 대한 처절한 대답이다.

노라 역시 지켜야 할 안나가 있었음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삶을 포기하는 것을 '나약함'이라 부르지만,

사실 무언가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아주 '적극적인 행위'다.

그것이 삶이든, 꿈이든, 사랑이든 말이다.


노라는 삶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서 동생을 지켜내는 용기를 발휘했고,

그 희생을 자양분 삼아 안나는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다.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살 용기를 쥐여주어야 할까.

영화가 조심스레 내놓은 답은 "일단 살아가라, 그리고 되짚어보라"는 침묵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결국 극복해 낸 노라의 얼굴이 그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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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호흡이 남긴 작은 아쉬움


이 깊고 섬세한 영화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박평식 평론가의 "조금 더 팽팽히 조였으면"이라는 단평에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

앞서 이 영화의 전개를 '쏟아진 물을 맨손으로 주워 담는 것'에 비유했다.


하지만 물을 주워 담을 때, 꼭 숨죽이고 진지할 필요만 있을까?

때로는 뒤에 경쾌한 재즈나 밴드 음악을 틀어놓고,

손으로 물을 촥촥 튀겨가며 리듬을 탈 수도 있지 않은가.


<센티멘탈 밸류>는 변주가 거의 없이 컷과 컷, 씬과 씬이 실타래를 그저 '풀어내듯' 이어진다.

감독이 의도한 관조적 템포겠지만,

전개를 조금 더 늘이기도 하고 팽팽하게 잡아당기기도 했다면 어땠을까.


영화가 줘야 할 원초적인 긴장감이나 리듬감, 즉 '영화적 재미'가 덧대어졌다면

개인적으로는 더 고개를 앞으로 기울이며 영화에 몰입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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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고유한 가치를 향하여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

남들이 보기엔 아무리 평범하고 하찮아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뜻깊은 의미를 지닌 가치를 뜻한다.


어쩌면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모든 타인의 삶은 이 '센티멘탈 밸류' 투성이일 것이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그 내밀한 상처와 의미를 결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러워야만 한다.

누군가의 숨겨진 센티멘탈 밸류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


그것의 다른 이름은 결국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