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깎이 소년 (1/4)

by 걍마늘

정오의 전시회 소식은 중간고사 출제 원안을 넘기고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우연히 접했다. 마침 교무일지 작성도 끝난 참이라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포털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림 하나가 눈에 띄었다. 로댕의 <키스>를 베이컨 풍으로 재해석한 그림 같았다. NOON이라는 재외 한국인 작가의 작품이었다. <After-NOON>展은 국내에서 여는 첫 전시회라고 했다. NOON이 정오라는 사실은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고 알았다.

기사에 의하면 정오는 예술대학교를 졸업한 해에 영국 왕립미술원에 들어갔고 스물일곱 살에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NOON이라는 예명으로 데뷔 展을 치른다. 테이트모던은 문자 그대로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이러한 이력은 그녀를 설명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보수적인 틀과 진보적인 관점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탁월한 균형 감각을 보여주었고 그 탓에 양쪽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동시에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보편성을 획득했으며 이는 그녀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라고 평가되었다.’

소영은 웹페이지를 위아래로 스크롤하며 여전한 그 호기심 어린 눈매를, 무해한 미소를 이끌리듯 다시 보았다.

정오는 “괜찮아”, “상관없어”, “좋을 대로 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배려심이 있다고 해야 할지 자기주장이 없다고 해야 할지 소심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진짜로 별 생각이 없는지 그저 두루두루 잘 지내고 싶을 뿐인지 어쨌거나 적을 만드는 성격은 아니라 다들 그녀를 좋아했다. 예쁜 소년처럼 오밀조밀하게 잘생긴 외모도 물론 한몫했으리라 여겨진다.

정오는 정오에 태어나 정오가 되었다. 이름부터가 특별했다. 둘 다 예술중학교 출신이었으며 교과 성적도 실기 성적도 소영과 학교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우수했다. 다만 교과 성적은 소영이 더 좋았고 실기 성적은 정오가 더 좋았다. 집은 소영이 더 부유했다. 소영은 엄마가 승용차로 등하교를 시켜주었고 정오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녔다. 이런 점들이 두 사람에 대해 얼마나 설명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돌이켜보건대 정오를 늘 의식했음은 분명하다.

정오는 이미 열세 살 때 첫 전시회를 열었다. 피아니스트인 아빠와 바이올리니스트인 엄마가 예술중학교 합격 기념으로 지인들을 초대해 열어 준 아마추어 전시회였으나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화단에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유명세를 탔다. 첫 국내 展을 첫 전시회를 열었던 작은 화랑에서 열기로 한 데는 어쩌면 이러한 이유도 있었으리라. 훗날 뜻깊은 장소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곳에서 귀환한 왕처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는지도.

사실 소영이 듣고 자란 찬사도 정오 못지않았다. 그것이 과찬이든 뭐든 일곱 살짜리가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을 두고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바스키아를 운운했을 정도니까. 이렇듯 부모님을 들뜨게 한 찬사들이 엘리트의 교양 수업처럼 미술을 시작한 소영으로 하여금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 코스를 밟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길은 예술가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정오와 나란히 놓으면 여지없이 모두의 관심이 정오에게로 기울어졌다. 누군가는 자신과 정오를 천연 수제 비누와 포르투갈 왕실 비누라는 클라우스 포르토에 비유하기도 했다. 어쨌든 다 같은 고급 비누가 아니냐고 생각은 했으나 실제로 사용해 보니 왕실 비누 쪽이 아르데코 양식의 포장지부터가 더는 다른 비누를 떠올리지 못하게 할 만큼 마음에 들었고 좋은 쪽으로 해석해야 할지 나쁜 쪽으로 해석해야 할지 헷갈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전시회 날짜를 보니 며칠 뒤였다. 소영은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앉아 빙그르르 의자를 돌렸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지만 또, 다시는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고민이 됐다.




화랑은 안국동 사거리 쪽 인사동길 초입에 위치했다. 소영은 멀찍이서 입구에 붙은 전시회 포스터를 힐금거리며 삼십 분이 넘게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돌아섰다. 규모는 작았지만 생각보다 관람객이 많았다.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 년이 넘었다. 알아도 못 알아볼 판이다. 몸도 많이 불었다.

인사동길을 따라 종로 쪽으로 걸었다.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지나간다. 해맑은 웃음소리가 산뜻하게 귀에 걸린다. 하늘은 새파랗게 높고, 떨어진 은행잎들이 노랗게 거리를 점령했다. 얼추 십 년 만에 찾은 인사동인데 고풍스러운 예전 모습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외국인도 그때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

소영은 데이트 중인 연인들 틈에서 액세서리 숍을 기웃거리다 초상화를 그리는 길거리 화가 앞에 멈추어 섰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듯 선이 거칠고 그림체가 투박하지만 흔치 않은 개성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의뢰인은 핸드백을 겨드랑이에 끼고 주위를 서성이는 남자의 여자 친구 같다. 행복한 주말 한때를 보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한때가 여자의 초상화로 기록되고 있었다.

사진을 찍듯 똑같이 그리는 것이 화가에게 바라는 재능이라면 낭만에 취한 연인들의 눈먼 돈을 주워 먹는 사기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지금 수준에서 만족한다면 거리의 화가로만 남을 것이다. 거리에서는 화가라 불리겠지만 진짜 화가는 아닌 것이다. 화랑에서 전시회를 가질 일도 없을 것이고 명성을 얻을 기회도 없을 것이며 후대에 남을 작품을 남기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모두가 정오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림에서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화가의 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뿌리 같은 투박한 손이, 세상에 그보다 섬세한 게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섬세하게 깎인 연필을 쥐고 있다. 그래서 더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한눈에 그 연필을 알아보았다. 연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그 연필은 잊을 수가 없었다. 신이 내린 솜씨로 깎은 더없이 완벽한 연필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연필이 깡통 한가득 꽂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