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zip

도서, 관

by 걍마늘

K가 “조심! 조심!”을 외치며 작업자들 사이를 오간다.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컨테이너 트럭에서 내린 상자를 마치 빵 부스러기를 나르는 개미들처럼 부지런히 도서관으로 날랐다. 해가 지고 있었다. 구립도서관을 떠난 첫 번째 트럭이 오전 9시 정각에 중앙도서관에 도착했다. 꼬박 하루가 걸렸다.

구립도서관은 3개월에 걸쳐 ‘종합정보센터’라는 이름으로 리모델링될 예정이다. 결국 도서관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이전 시대의 책들은 모두 한 달 뒤에 개관하는 중앙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 디지털로 저장되었다. 곰팡내 나는 서가에서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기는 일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옛 시절의 추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구립도서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대기 중인 사서 Y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대학원생과 근로 장학생으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그들은 ‘도서 매장’에 관한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다 거의 동시에 당시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구립도서관을 떠난 마지막 컨테이너 트럭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없어지게 될 줄은 몰랐어. 최소한 백 년 정도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Y는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놓고 앉아서는 노트에 무언가를 정신없이 써 내려가던 K의 모습을 기억한다. K가 반납하는 책 갈피에 ‘커피 한잔해요’라고 쓴 쪽지를 꽂은 것은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도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Y는 다음에 책을 빌리러 온 K에게 ‘6시 별다방’이라고 쓴 쪽지를 쥐여주었고, 두 사람은 그날 저녁 테이블마다 초가 켜진 학교 앞 커피숍에서 낯선 이름의 커피를 주문했다. 한동안 도서관과 커피숍과 자취방을 바쁘게 오가며 그들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뜨겁게 이야기했다.

- 인간과 구분이 안 되는 안드로이드도 곧 나온대. 이제 배우자도 필요 없을 거라는데?

Y의 남편은 휴먼 로봇 인터랙션 LAB에서 일했다.

“벌써 원시인이 된 기분이야.”

- 언제나 둘 중 하나지.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기억하거나, 잊거나.”

누가 K의 어깨를 두드렸다. 작업 반장이다. K는 그가 내민 디바이스에 직원 번호를 입력했다. “점검해 보시고 문제가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기계처럼 무뚝뚝한 말투다. 꼭 로봇 같았다. 몸 어딘가에 콘센트 같은 곳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었다.

중앙도서관은 지상 1층, 지하 12층짜리 건물로 어딘가 신식 봉안당 같은 분위기가 났다. K는 반짝반짝하게 닦인 복도를 지나 도서관 마크가 대문짝만 하게 박힌 엘리베이터를 탔다. 작업자들이 떠난 지하 10층으로 내려가, 20세기에 발간한 전집류가 보관된 섹션으로 갔다.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상자에 붙은 청구기호 라벨을 확인한다. 곰팡내 나는, 책장이 누렇게 바랜 삼중당 문고가 담긴 상자를 통로로 내렸다. 밤새도록 상자에 걸터앉아 훔쳐 갈 책들을 골라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