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호랑이 (3/5)

by 걍마늘

“꿈이라는 생각이 들면 꿈이 깨잖아? 일어나 보니 도서관이었어. 긴 책상에 드문드문 사람이 앉아 있었지. 다들 조용히 독서 중이었고, 서가 사이로 보이는 창문 밖의 나무들도 조용히 흔들렸어. 그런데 불현듯 꿈속에서 본 그림 제목이 떠오르는 거야. 왜 미술관에 가면 전시된 그림 옆에 캡션이 붙어 있잖아.”

“제목이 뭐였는데?”

“Tyger in the night. 타이거의 i가 y라는 점이 특이했지. 그래서 또렷하게 기억났는지도 모르겠어. 곧장 600번대 서가로 달려갔어. 궁금하잖아, 실제로 있는 그림인지. 키워드는 세 개였어. 핀란드, 미술관, 그리고 Tyger in the night. 일단 세계의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이 있는지 찾아봤어.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숲 속의 미술관이 정말로 존재하나. 그런데 미술관보다 그림을 먼저 찾았지. 스칸디나비아 풍경화 도록에 그 그림이 있는 거야. ‘페카 에델펠트’라는 화가의 그림이었지.”

아내는 늘 머리맡에 손바닥만 한 노트를 두고 잤다. 잠결에 스탠드 불이 켜 있어 돌아보면 엎드린 채로 노트에 뭔가를 쓰고 있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또렷하게 꿈을 기억하는 편이었다.

“도록을 넘겨보다 서가 틈으로 서가 뒤에서 소곤거리는 커플을 봤어. 편히 읽으라고 갖다 놓은 스툴에 꼭 붙어 앉아서, 남자는 제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고 여자는 연신 맞장구를 치며 입을 막고 웃었지.”

빵, 하는 클랙슨 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핸들을 튼다. 차로 변경을 하려는 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 사이드미러가 아내에게 가려진 찰나에 사각지대가 생겼다.

“처음엔 화가 났어.”

“그렇지. 도서관에서 떠들면 쓰나.”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분했다고 해야 하나.”

“분했다고?”

“그러다 슬퍼졌지.”

“왜?”

“그 여자가 나 같아서.”

나는 무어라 대꾸하려다 말았다. 떠오르는 말들이 잡히지 않는 물고기들처럼 머릿속을 떠돈다.

“그때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비상경보가 울린 듯했지. 기억하지? 저 녀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룸미러에 꿈틀거리는 아들이 비친다. 눕히기만 하면 발작 버튼이 눌린 듯 자지러지게 울던 녀석이다. 귀가 간지러운가. 자기 얘긴 귀신 같이 알아듣는다.

기저귀와 여벌옷과 아기띠 따위를 배낭에 바리바리 싸 들고 굳이 외식을 감행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간신히 재운 아들을 담요로 둘둘 말아서 방풍커버를 씌운 유모차에 신줏단지 모시듯 옮기고 우리도 단단히 외투를 챙겨 입었다. 다음 수유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채비를 마친 우리는 고깃집으로 달려가 자리에 앉자마자 삼겹살 3인분을 외쳤다. 하지만 아들은 야속하게도 고기를 불판에 올리자마자 잠이 깬다. 우는 아이를 번갈아가며 안고 가게를 들락날락하면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실감하며 각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집에 들어와서야 아이 신발 한 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바닥만 한 신발 한 짝을 찾겠다고 꽁꽁 얼어서 온 길을 몇 번이나 다시 오갔다. 비싼 신발도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신고 다니는 아이를 상상하며 미리 사 둔 신발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신발 한 짝과 함께 소중한 무언가를 송두리째 잃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다행히 신발은 찾았다. 단념하고 돌아가는 길에, 누가 지하철 출구 계단 난간에 잘 놓아둔 걸 발견한다. 나는 무슨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아서 신발을 감싸 쥔 채로 한동안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보통 1층에 어린이 열람실이 있잖아. 유모차를 거기 세워 뒀나 했지.”

“잠깐. 아직 꿈이지?”

“들어봐. 아무리 내려가도 1층이 나오지 않는 거야. 꼭 에셔의 무한 계단 같았지. 착각을 했나 싶어 도로 올라가 봤지만 마찬가지였어. 올라가도 내려가도 계속 같은 층이었지.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사람들은 무서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어. 결국 포기하고 계단에 주저앉았는데 문득 꿈인가 싶어지더라. 그러자 번쩍 눈이 떠졌어. 낯익은 줄무늬 벽지가 눈에 들어왔지. 정말로 애가 울고 있었어. 젖을 먹이다 깜빡 잠이 들었나 봐. 서둘러 다시 젖을 물리고 가슴을 쓸어내렸어. 그런데 단어 하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거야.”

“무슨 단어였는데?”

“페카 에델펠트.”

“얼마나 남았어?”

아들이 불쑥 끼어든다.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 장래희망은 아이언맨이었으나 현재는 스파이더맨을 더 좋아한다. 싫어하는 것은 영어와 콩. 최근엔 로블록스라는 게임에 빠졌다.

“일어났어? 어디 보자… 한 15분쯤 남았네.”

도로가 뻥 뚫렸다. 내비게이션으로 구간 정보를 확인한다. 이제 막히는 곳은 없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왼편으로는 큰 강이, 오른편으로는 모내기가 막 끝난 거울 같은 벌판이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하늘은 드높고, 운행은 순항 중이다.




“이쪽인가? 맞겠지?”

고추밭 옆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왕복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한적한 시골길이다.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수풀이 함부로 우거진 허허벌판뿐이었다. 구멍가게 하나 없었다.

“아무것도 없네.”

손차양을 한 아내가 장난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레미콘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방금 지나온 삼거리를 통과한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길이 있었다. 공사 중인 아파트 단지는 그 길을 따라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장화 신고 들어와서 구두 신고 나간다잖아.”

어느덧 해가 중천이라 고개를 들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햇살이 따가웠다.

“버스는 다니겠지? 초등학교가 차로 10분이라고 했나?”

“지하철 연장도 된다고 했어.”

“마트는 없었지?”

“요즘 누가 마트 가서 장을 봐. 인터넷으로 주문하지.”

“인터넷은 되겠지?”

“설마, 독도에서도 된다는데.”

“여기서 제일 가까운 큰 병원이 어디지? 10년 안에 학교에 지하철에 마트에 병원까지 다 생길 수 있는 거 맞지?”

“그래도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잖아. 화장실을 따로 쓸 수 있다고.”

책을 잔뜩 쌓아 놓아도 넉넉한 책상과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의자를 놓을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사슴 머리라든가 청새치 따위가 걸린 방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방 하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은 딸이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들었다. 내년이면 녀석도 십 대다. 아들은 곧 질풍노도의 시기의 겪을 참이고, 근거리 시력이 떨어진 아내는 노안을 의심하고 있다. 나는 어깨통증으로 며칠째 수면부족이라 병원에 다녀왔다. 벌써 오십견인가 했는데 석회성건염 진단을 받았다. 우리가 탄 배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있었고 아무도 마음대로 내릴 수 없었다.

“새소리가 예쁘네.”

아내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서서 찌푸린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본다. 나는 한풀 꺾인 마음으로 도로 차에 올랐다. 한숨이 나왔다.

“배고파.”

딸도 잠이 깼다.

“빵 먹을래?”

“오줌 마려워.”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어도 좋을 듯싶었다. 의견을 묻자 아내가 그래, 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 휴게소로 직행했다. 눈에 띈 빈자리에 재빨리 차를 세우고 식당가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들은 돈까스를 주장했고, 딸은 떡볶이를 원했다. 현실이 풍랑처럼 달려드는데 각자 다른 방향을 노를 젓는 기분이었다. 결국은 아들도 오케이, 딸도 오케이를 한 라면으로 메뉴를 통일했다. 그래서 라면 두 그릇에, 만두 한 접시를 추가했다.

아이들은 뜨겁고 매운 라면을 후루룩거리며 잘도 먹는다. 그래서 혹시나 모자랄까 나는 만두 한 개에 라면 한두 젓가락 정도를 앞접시에 덜어먹고 말았다.

“안 먹어?”

“아침에 산 빵 아직 안 먹었잖아. 그거 먹어야지.”

아내가 스마트폰을 내민다.

“봐봐. 이 그림이야.”

상상한 것보다는 평범하다. 투박하다고 해야 할까 소박하다고 해야 할까. 자작나무는 확실히 이국적이었으나 묘사가 지나치게 사실적이라 오히려 감흥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확대한다.

“여기 호랑이가 있단 말이지….”

전화벨이 울렸다. 내 전화다.

경미한 사고였다고 했다. 옆 차로에서 급하게 우회전해 들어가는 차를 보지 못한 아버지가 우회전하자마자 차로를 변경했다가 그 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은 것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일단 보험 처리를 하고 혹시나 싶어 병원을 다녀왔는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녹내장이란다. 시신경이 80퍼센트나 손상됐다더구나. 아니 택시 운전하는 양반이 그 지경이 되도록.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수술을 해도 제대로 관리를 못 하면 실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제 운전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평생 운전만 한 사람이었다. 분명 할 말이 더 있었을 텐데 어머니는 끝내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어른들은 늙는다.

“왜?”

눈치 빠른 아내가 표정을 살핀다.

“이번에 대출받으면 한 달에 얼마쯤 나가지?”

“글쎄… 원리금만 백 정도겠지.”

“피곤하네.”

마른세수를 하다 화장실 핑계를 대고 일어섰다. 건물 밖으로 나가 화장실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우연히 경유지를 공유한, 어쩌면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인연들이 스쳐간다. 관심을 갖고 보니 유행하는 옷이 있었고, 그러나 유행에 무심한 이들이 더 많았으며, 몇은 기이했다. 대다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근심거리 하나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해맑게 웃었고 삼삼오오로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사연이 괜히 궁금해졌다. 청소부가 묵묵히 재활용 쓰레기통을 정리한다. 꾸덕꾸덕해 보이는 안 팔리는 주전부리 뒤에서 한숨을 돌리는 판매원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잠시 들르고 마는 데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터전이리라.

‘고기를 잡는 일은 나를 살려 주지만 동시에 나를 죽이기도 하지.’

나는 오줌 누는 내내 소변기 위에 붙은 명언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화장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으나 나에게는 가슴 깊이 꽂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젖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한다. 한때는 내 안에도 호랑이 같은 게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그 호랑이는.

눈이 움푹 들어간 백인 남자와 푸른 눈을 가진 남자애가 지나갔다. 익숙한 공간에 낯선 감각이 더해지자 전에 없던 긴장감이 생겼다. 화장실을 나서는데 시끄러운 ‘뽕짝’이 새삼스레 귀를 사로잡는다. 나도 모르게 음반 매대 앞에 멈추어 섰다. 리듬은 빠르고 경쾌한데 멜로디는 슬프고 가사는 그리움에 사무쳤다. 나무 주위를 빙빙 돌다 버터가 된 호랑이가 떠오른다. 분노는 녹고 비애만 남은 것이다.

“…맞지?”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휴게소에서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모르는 사람과 서로 첫눈에 반할 확률보다는 높을까. 다시 볼 일은 없겠지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날이 오늘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짐작지 못했다. 나는 나를 부른 여자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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