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하는 남자가 있대요.”
내가 입을 떼자 그가 서둘러 음식을 삼켰다.
“네? 머리로 뭘…?”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죠. 잠자리 상대에 관한 얘기 같았는데 저도 모르게 귀가 그쪽을 향하더군요. 처음엔 대담한 여자네 했는데 듣다 보니 괴이하다고 해야 할까. 머리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거지? 뭘 어떻게 하길래 그 남자랑 하겠다고 줄을 서는 거지? 호기심이 생겼죠.”
“줄을 서요?”
“특정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면 비공개 계정으로 DM이 온다더군요.”
“비공개 계정이라… 의심스러운데요.”
“그 계정을 팔로잉하면 다른 팔로워들이랑 댓글로 소통이 가능하답니다. 그런데, 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팔로워들을 보니까.”
“설마 정말로 머리를 쓴다는 말은 아니겠죠?”
“어떻게 하는지 누설하면 다시는 그와 만날 수 없다고 했어요. 말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혹시 메타포가 아닐까요?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고들 하잖아요.”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실제로 만나기는 하는 것 같은데….”
“만약 AI 같은 거라면? 만난다는 말이 연결이라든가 접속을 뜻할 수도 있잖습니까. 개인 맞춤형 인공지능이랄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상대가 되어 있는 거죠. 요즘 인공지능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이미 가능하거나 머지않았거든요.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도 있잖아요. 어디선가 은밀히 인공지능 실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사이비종교라든가….”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무슨 이야길 하고 있나 싶었다. 다 시간 낭비 같았다.
“천천히 드세요. 체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속으로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고 있었다. 허기가 채워지질 않았다. 전화를 받는 동안 남자가 하나둘 나른 음식들이다.
“무슨 전화였습니까?”
“예?”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제 얘깁니까?”
“제 이야기기도 하겠죠.”
남자도 포크와 나이프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무어라 대답할지 고민하는 듯 생각에 잠긴다. 남자는 소녀의 사진에 얽힌 사연을 구구절절 들려주었으나 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남자가 말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더 마음 편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시 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저는 가까운 사람한테 솔직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몰라도 그만일 얘길 했다가 그 말 때문에 멀어질까 봐. 진실은 때로 송곳 같으니까요. 일격에 심장을 뚫어버리죠.”
그의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그를 믿어도 될까. 의심해야 하나. 의도가 있었을까. 하지만 밥을 사겠다는 말은 내가 먼저 꺼냈다. 왜 그랬을까.
“이별 통보였어요.”
“이런.”
이유를 물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공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무슨 상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입을 다물자 다시금 허기가 밀려들었다. 아무리 배를 채워도 소용없었다.
“한 잔 할래요?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방을 잡죠.”
한 가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네?”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잖아요.”
나는 그가 폭풍우로 변신해 배를 뒤집어 버리기를 바랐다. 거대한 파도가 되어 단숨에 나를 집어삼키기를 바랐다. 바닷속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가 황홀한 정경 속으로 내동댕이쳐 주기를 바랐다. 커다란 조개껍데기 안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고요히 파도치는 해변에서 비너스처럼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래요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