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익스프레스 (4/6)

by 걍마늘

나는 남편을 이른바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그 지인이란 다름 아닌 A다. 남편은 그녀가 교직원으로 일하는 대학의 신임 교수였다. 이야기 많이 들었다는 인사가 상투적인 말이 아니었던 것이 그는 이미 나의 가정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첫 만남에 대뜸 경제적인 부분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내가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가 아님은 스스로가 더 잘 알았다. 외모도 학벌도 직장도 변변치가 않은데 집안마저 최악인 것이다.

그러자 나의 의구심을 읽기라도 한 듯 세 가지 조건을 달았다. 각방을 쓰고, 스킨십은 금지하며, 아이는 갖지 않는다.

당시 나는 편의점과 카페와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학자금이니 전세금이니 하는 대출금 상환에, 아버지 병원비에 약값에 생활비를 대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빠 덕분에 약속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는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하루라도 빨리 고된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그가 내건 조건은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던 바이기도 했으므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아마도 그는 나의 대답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A를 붙잡고 물었다.

“굳이 왜 결혼이어야 하지? 일이 복잡해지잖아. 동거해도 되고, 집안일할 사람이 필요하면 가정부를 쓰면 되잖아.”

“너한테 반했나보지.”

그녀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왜 그렇게 생각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얘기한 거야?”

“내가 아는 거의 전부?”

그녀는 남자애들뿐만 아니라 여자애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연모의 대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흠모의 대상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수영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다가 수영을 그만두었다는데 학교 공부도 곧잘 했으니 팔방미인이란 그녀와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나는 배경처럼 늘 거기 있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아이였다. 언젠가 내가 물에 빠졌을 때 하필이면 그녀가 곁에 있었고 그녀가 나를 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가까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가 아니라 나를?

“설마 둘이 사귀었던 건 아니지?”

“사귀기는. 종강 파티 때였나. 선배한테 연락을 받고 들렀다가 우연히 그 사람 옆자리에 앉게 됐거든.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후배들도 있었고. 어쩌다 대화가 그쪽으로 흘러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자연스럽게 부모님 얘기가 나왔어. 술이 들어갔잖아, 그때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집요하게 너에 관해 묻더라고. 네가 몇 번 학교로 놀러왔었잖아. 그때 널 봤나보더라. 그래서 그냥 관심 있으면 한 번 만나 보세요, 한 거지.”

그러고는 굳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혹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에게 끌리는 사람이었을까?”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모르는 척 되물었다.

“내가 그래 보여?”

“수학여행 갔을 때 있잖아. 일부러 뛰어든 줄 알았어. 죽으려고.”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널 보고 있으면 말이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 같단 말이지.”

“불쌍해 보인다는 얘기야?”

“불쌍하다기보다는, 텅 비었다고 해야 하나. 그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 사람도 그걸 봤는지도 모르지.”

그러자 정말로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나에게서 무얼 봤을까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알맹이의 행방을 궁금해 한 적이 없다. 아니, 알맹이 따위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결혼을 말하면서 아무한테나 그런 조건을 덧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유를 알아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은 아, 하며 멋쩍게 웃었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 내가 먼저 연락했고 바로 약속을 잡았다.

“저는 한 번도 여자 손을 잡아 본 적이 없습니다. 손끝만 스쳐도 웃음이 터졌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진짜 문제는 일단 한 번 터지면 도무지 그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웃다가 실제로 졸도한 적도 있으니까.”

대학교 근처 스타벅스였다. 우리는 매장을 점령한 카공족들 사이에 끼어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다들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도 대화 소리가 들릴까 신경 쓰였다.

카페는 나에게 더없이 익숙한 공간이지만 손님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손님의 관점에서 보는 카페는 알바생의 관점에서 보는 풍경과 사뭇 달랐다. 카운터 뒤에서는 불안과 혼돈 그 자체였던 풍경이 여유와 평화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가 가져올 안락이 꿀처럼 달콤하게 여겨져서 마음은 이미 반쯤 허락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 고민이 됐다.

“알레르기 검사도 했고, CT에 MRI까지 다 찍었습니다. 혹시 몰라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 보았습니다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건강 지표가 민망할 정도로 완벽하게 정상이었습니다.”

“그쪽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굳이 결혼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친구로 지낼 수도 있잖아요.”

“저한테 결혼이라는 건 신발 끈 같은 느낌입니다. 묶지 않아도 신을 수는 있지만 묶어야만 비로소 신고 다닐 수 있는 신발이 되지 않습니까. 결혼이라는 끈으로 묶지 않은 나라는 신발을 신고서는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고. 평범한 연애는 불가능했으니 이런 인간을 받아 줄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끝없는 바다를 홀로 항해하는 나를 떠올렸다. 폭풍우에 배가 부서져도 누군가는 계속 노를 저어야 하고 누군가는 계속 물을 퍼내야 했다. 나에게 결혼은 그런 것이었다. 노를 저으며 동시에 물을 퍼낼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했고, 대학에 다닐 때까지는 할머니와 둘이 지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혼자 남은 할머니를 부모님이 모셔온 것 같습니다. 모셨다고 하기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차례로 재혼을 했습니다. 건설 회사를 다닌 아버지는 울산으로 발령받아 내려갔고, 어머니는 대학원 후배와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이후로 어머니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본 것이 마지막입니다.”

“완전히 연락이 끊긴 건가요?”

“어머니는 가끔 연락합니다. 아버지는 뭐, 실은 아버지 걱정은 안 했습니다. 걱정이 안 됐으니까. 어머니는 늘 그러셨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사람이니 내 걱정이나 하라고.”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어요?”

“모르겠습니다. 원망 비슷한 감정이 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예민해진 감각이 더 말썽이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소리였습니다. 나머지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해 피할 수가 있었는데 소리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달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종일 이어폰을 꽂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사람이 없고 조용한 곳으로만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덕분에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됐고 좋은 대학에도 들어갔으니 결과적으로는 실보다 득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약서는 내가 쓰자고 했다. 그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세 번째로 만났을 때 바로 이, 신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계약서를 펼쳐놓고 마주앉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서로 확인하고 서명했다.

‘계약의 해지는 해지를 요청하는 일방의 의사로 충분하며 이유를 밝힐 의무는 없으나 보상에 관해서는 무조건 상대방의 의견을 따른다.’

요구하는 쪽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원하는 것을 가지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한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법을 공부한 바 있는 A의 조언이다. 계약서 초안도 그녀가 잡아 주었다.

가능한 가장 빠른 날로 날짜를 잡고 청첩장을 돌렸다. 결혼식은 호텔에서 했다. 신혼여행은 미국으로 갔다. 남편의 어머니는 차로 30분이면 타임스퀘어에 도착할 만큼 뉴욕과 가까운 곳에 살았다. 우리는 그녀의 집에서 머물며 뉴욕을 오갔다. 그녀의 새로운 가족과 허드슨 강이 보이는 다리 밑에서 바비큐 파티도 했다. 신혼집도 남편이 구했다. 남편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교외의 삶이 가져다주는 인생의 풍요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으나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먹구름이 걷히고 풍랑은 잦아들었다. 그에게는 나침반이 있었다. 북극성만 찾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고 때로는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 식사를 하고 돌아왔으며 시간이 나면 거실에서 치맥을 하며 80인치 TV로 영화를 보았다. 지인의 결혼식이라든가 돌잔치에도 빠짐없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는 남편이 장남처럼 장례식을 치렀다. 공부를 좋아하는 남편은 주로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냈고 나는 아침저녁으로 필라테스와 요가를 병행하며 오전에는 문화센터 강좌를 수강하고 오후에는 서점에 들르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한 달에 두 번 독서 모임에 나갔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참거나 스스로 해결했으며 누군가 불편한 기색을 비치면 눈치껏 그 자리를 피하거나 무시하고 말았다. 언짢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때마다 우리의 계약은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그래도 관계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쁜 기억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떠날 수 있었다. 하필 그 순간이 호로록거리며 스파게티 면을 흡입하는, 입가에 토마토소스가 묻은 모르는 남자를 앞에 두고 있을 때라도 하는 수 없다.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갑작스러운 법이다. 영원히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고, 저러다 곧 죽겠구나 싶었던 아빠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이별하기 좋은 때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말문을 연 남편은, 처음 들어보는 낮은 목소리로,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했다. 언제 알았을까 하다가 그래서 그랬나 헛웃음이 나다가 명치쯤이 뻥 뚫린 듯 허전한데 배가 고파서인지 외로워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